[문화칼럼] 희망의 시작
[문화칼럼] 희망의 시작
  • 승인 2021.03.0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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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 그 중심에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이 있다. 해마다 12월 7일 스칼라 극장 시즌 개막일에는 온 나라가 들썩인다. 표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워야 하는 노숙도 불사한다.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시즌 개막 공연에 대한 온갖 화제를 다룬다. 한마디로 그야말로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20-21 시즌 개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차 대전 후 처음 있는 일이란다. 대신 비대면 갈라콘서트를 열었다. 거장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스칼라극장 오케스트라·합창단과 최고의 성악가가 함께한 공연이었다.

미디어 아트가 돋보이는 무대를 바라보며 오케스트라가 객석에 자리한 보기 드문 콘셉트의 콘서트였다. 이제 바리톤으로 활동하는 도밍고를 비롯하여 당대 최정상급 성악가의 배우 뺨치는 연기와 목소리를 듣는 즐거움이 큰 공연이었지만 무엇보다 희망을 찾기 위한 간절함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콘서트였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서곡으로 음악회의 막이 올랐다. 마스크위로 보이는 리카르도 샤이의 간절한 눈빛, 한음 한음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주에 진정성이 가득했다. 곧이어 “그대들에게 내 딸은 보잘 것 없고 필요치 않으니, 돌려 달라”고 흐느껴 애원하는 배우의 말은 이제 우리를 용서하고 평범한 일상을 돌려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처럼 다가왔다.

베르디 국립음악원 3인방 중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세상을 떠났고 리카르도 무티는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라스칼라 음악감독으로 있는 리카르도 샤이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희망과 같다. 콘서트 지휘자로서 대단한 업적을 쌓았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오페라 지휘자 ‘샤이’가 더 커 보인다. 간결하지만(이런 점 때문에 한 때 약간의 평가 절하가 있었다) 설득력 있는 그의 음악(절대 과시하지 않는 그의 음악은 매우 진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과 성악가의 아름다운 목소리만큼이나 이날 공연은 희망의 메시지가 선명했다. “예술이 우리의 희망이다. 이곳 라스칼라로부터 암울한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꽃피우자.”라는 멘트는 부러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암울하다. 그림자를 잃고, 마음도 잃고 거기다 기억까지 잃은 사람들 이야기다. 하루키의 대표작 1Q84의 모태 같기도 한 소설 ‘원더랜드’의 남자는 이유도 모른 채 삶의 끝에 내몰리고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도 찾지 못한다.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속절없이 휩쓸려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세계의 끝에서는 모두들 무언가 하지만 거기에 목적·이유가 없다. 그냥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증오·욕망도 없다. 하지만 “싸움과 증오·욕망이 없다는 건 그 반대의 가치 즉 기쁨과 축복·애정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루키는 말한다. 모두들 욕심 없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 영원히 살 수 있지만 남자는 삶의 고통에 잠기더라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을 찾고자 한다. 사랑에 눈을 뜨고 그 사람의 기억 곧 자아를 찾아주고자 노력한다.

‘세계의 끝’ 여자의 마음을 찾아주기 위한 매개체는 아코디언이다. 그 여자는 말한다. “아코디언은 노래와 연결되고, 노래는 나의 엄마와 연결되며 엄마는 내 마음의 끝자락과 연결되어 있다.” 희미한 기억의 조각을 찾아 연결하기 위한 도구가 노래다. 그림자와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는 아코디언을 만지다 떠오르는 몇 가지 음들이 ‘대니보이’임을 기억해 낸다. 그 노래가 자신에게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지 깨닫는다. “음악은 긴 겨울에 얼어붙은 내 근육과 마음을 풀고, 그리고 내 눈에 따스하고 그리운 빛을 선사해 주었다.” 결국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음악을 통해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곧바로 팬데믹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희망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자주 나오는 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백신과 더불어 이런 간절함이 우리의 희망을 더 앞당겨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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