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그래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백정우의 줌인아웃] 그래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 백정우
  • 승인 2021.03.0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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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올드랭사인
영화 '올드 랭 사인' 스틸컷

당초 써놓은 글이 있었다. 마감을 하루 앞두고 성전환으로 강제 전역한 변희수 하사의 소식이 전해졌다. 안타까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글로나마 그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2시간 만에 바꿔버렸다.

나름 모태신앙이(었)다. 교회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관해 한 번도 얘기들은 바 없다. 단어 자체를 금기시여긴 시절이었다. 독재정권은 국가가 성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 국민의 욕망과 상상을 억압해왔으니까. 그 시절 교회라고 예외일 리 없다. 이성적이고 생식적이며 남성적인 성만 국가가 허용했을 터. 그토록 열심히 교회에 다닌 내가 퀴어와 트랜스젠더에 관한 어떤 말도 들어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퀴어영화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 2000년대 이후 주로 독립영화 진영에서 소규모로 제작 개봉된 한국 퀴어영화는 2010년을 기점으로 제작편수가 부쩍 늘어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퀴어 영화는 소준문 감독의 ‘올드 랭 사인’이다.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노인 동성애를 다룬다. 이혁상 감독이 만든 ‘종로의 기적’도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아우성과 고함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닌 조용히 스며들어 동성애도 이성애와 다를 바 없는 ‘사랑’ 임을 깨닫게 만들기 때문. 회유와 설복의 확성기를 제거한 퀴어 영화들이다.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은 배리 젠킨스 감독 ‘문라이트’였다. 동성애 중에서도 소외된 흑인동성애를 소재로 삼았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고자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이었다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던 두 남자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시작되는 소준문 감독의 단편영화 ‘올드 랭 사인’은 그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회한을 하나 둘 씩 끄집어내는 하룻밤 동안,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위치로 승화시켜놓는,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얘기하는 것은 사랑의 보편성이다. 이때 동성애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중심기제로 사용되는 것은 노인의 성인데, 동성애도 모자라 이성애에서조차 소외시킨 노인의 성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배짱은 탄복할 만하다.

의심할 바 없이 ‘올드 랭 사인’의 매혹은 말없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감정의 파동이다. 이를테면 재회한 노인들이 모텔에 묵은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감독은 손길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절절한 그리움과 사연을 그들 이마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깊게 뇌리에 각인시켜놓는다. 그 절절함이 어떤 이야기도 도달하지 못할 지점에 이르고 있으니, 처연하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는 이처럼 겹겹이 쌓인 소외와 편견의 굴레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난다.

정말로, 정말로 영화를 본 후로도 한참 동안 장면 장면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무엇이 이토록 감정을 붙잡아 맸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퀴어 영화들마다 추구했으되 이루지 못했고, 넘어서고 싶었지만 감히 발 떼지 못한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동시대성이라는 책갈피에 곱게 꼽아놓았다는 점.

‘올드 랭 사인’은 내가 만난 최고의 퀴어 영화라고 단언할 만한 작품이다. 25분에 불과한 영화가 호모포비아에게 또는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 된 이 사회를 향해 조용히 속삭인다. 사람이 되긴 힘들어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변희수 하사, 부디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에서 평안히 안식하기를.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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