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수상작 영화 ‘미나리’... 보살피지 않아도 자라는 미나리처럼
골든글로브 수상작 영화 ‘미나리’... 보살피지 않아도 자라는 미나리처럼
  • 배수경
  • 승인 2021.03.0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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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
모니카 엄마, 손주 돌보러 방문
처음 본 할머니-손자 에피소드
꽃길도 가시밭도 아닌 정착기
황무지나 다름 없는 땅 개간해
한국 채소 기르며 희망 꽃피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가 3일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제 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가 3일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가족은 누군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무거운 굴레가 되기도 한다. 영화 ‘미나리’ 속의 가족은 팍팍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왔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없을만큼 바쁘기만 하다.

제이콥은 결국 가족을 이끌고 캘리포니아 대도시를 떠나 아칸소로 이주를 한다.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 끝에 그들 앞에 나타난 새 터전은 바퀴 달린 트레일러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구하기 어렵고 병원도 멀어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걱정에 당황스러운 모니카와는 달리 제이콥은 기름진 땅에 ‘빅 가든’을 만들 생각에 한껏 들떠있다. 그들이 살게 될 집은 낯선 곳에서 아직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투게 된 부부, 갈등은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아이들을 돌봐주러 미국으로 오는 것으로 해결되는 듯 보인다.

순자의 등장은 잔잔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순자가 바리바리 싸온 고춧가루, 멸치, 한약 등을 꺼내놓는 풍경은 한국적인 정서가 깊게 배어있어 낯설지가 않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먼 타국으로 오는 순자의 마음이 그저 편하기만 했을까. 순자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감내했던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를 본 중장년층이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본 데이빗(앨런 김)과 순자의 케미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들어있는 영화에서 데이빗은 어린 정감독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는 듯 보인다.

쿠키도 구울 줄 모르고 ‘한국냄새’가 나는 ‘할머니같지 않은’ 할머니를 낯설어하고 피하던 데이빗과 순자가 결국에는 가족 중 누구보다 더 진한 유대감을 형성해 가는 과정은 감동스럽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피닉스비평가협회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전미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등 27관왕에 오른 윤여정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영화의 개봉과 함께 한국배우 최초로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비록 상은 윤여정이 휩쓸고 있지만 스티븐 연과 한예리는 물론이고 아역배우들, 일꾼 폴 역의 월 패튼까지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나리’는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이지만 그들의 고생스러운 정착기를 그리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삶이 비록 꽃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시밭길만 펼쳐진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일하는 병아리감별소에서의 시간도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고 농사를 짓는 과정에도 난관이 생기지만 거기에 포커스가 맞춰지진 않는다. 자칫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는 오히려 따뜻한 햇살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며 조용하게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순자의 갑작스러운 와병은 당황스럽고 뜬금없지만 이야기의 전개상 꼭 필요한 장치인 듯 보인다.

제이콥이 황무지가 다름없는 땅을 개간하고 기른 한국 채소는 그들 가족에게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가족이다.

‘미나리’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성은 “미나리는 참 좋은 거란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다 먹을 수 있어. 국에도 넣어먹고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라는 순자의 대사에 들어있다.

순자는 개울가의 물웅덩이에서 보살펴주지 않아도 쑥쑥 뿌리를 내리고 크는 미나리처럼 자식의 삶 또한 그러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레인송’(rain song)은 한예리가 직접 불렀으며 아카데미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올라있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금방 일어나지 말고 노래에 귀 기울이며 그 여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미국 영화사가 제작하고 미국 국적의 감독이 만든 미국 영화지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 규정지어진 것 역시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이민자의 삶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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