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
지나간다
  • 승인 2021.03.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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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수술을 하는 가족의 입원 기간 사나흘 동안 간병을 할 보호자 역할을 하기 위해선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코로나 시대 속 엄격한 병원 출입자 통제 탓에 병동 입구에서부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13자리, 휴대전화 번호까지 낱낱이 기계에 입력하고 열 체크를 한 후에야 원무과에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보호자 검사비 수납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대학병원은 왜 환자가 아닌 보호자까지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다 입력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병원이 어떤 근거로 출입하는 모든 이의 개인 신상을 주민번호 전체까지 다 확보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남은 절차가 많아 물어보진 못한다. 검사비를 내고나면 선별진료소부터 들러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일고여덟 시간 후 음성 판정 문자 통보를 받고서야 병동 출입이 허락된다. 병동에 들어가도 한 명 뿐인 보호자는 병동을 벗어날 수 없고, 만일 불가피하게 병동을 벗어나야 한다면 다시 보호자로 병동에 들어오기 위해선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절차를 다시 밟아 코로나 재검사 후 음성 확인을 받아야 한다.

수술을 하는 가족의 병수발을 들기 위한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힘들었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이 시대 속에서는 별 도리가 없다. 이렇게 감내해 내는 게 이 시대를 지나가는 법칙이다.

조용히 입 속으로 ‘지나간다’라고 뇌까린다. 그렇다. 지나갈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지금은 모두가 많이 힘들고, 번거롭고, 옴쭉 달싹할 수 없지만 이것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말이 제법 위로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지나간다’라고 되뇌는 일이 잦아졌다. 말도 안되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대구경북통합공항 특별법은 주저앉았을 때라거나, 나랏빚으로 선거 타이밍에 딱딱 맞춰 방역 보상에 나서는 광경을 재탕 삼탕 목도할 때 ‘이 또한 지나갈 거야’ 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LH 같은 정부기관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갖고 부동산 투기에 너도나도 나서는 것을 보면서, 없는 서민들은 꿈도 못 꿀 ‘불공정’을 당연하게 얘기하는 LH 일부 직원들의 ‘우리는 투자도 못한다는 말이냐’라는 반문을 기가차게 느끼면서도 이 또한 ‘지나간다’ 고 스스로 위로할 밖에….

투기꾼을 잡겠다고 수 십 차례나 규제에 규제를 더해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끊임없이 들이댔던 정부가, 그래서 투기꾼을 잡겠다던 정부가 실상은 투기꾼을 키워 온 것이 아닌가. 이래도 부동산 정책이 좌초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나. 그러고도 정부 여당은 국민에게 사과한다면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비리 의혹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어깃장 부터 놓는다. ‘우리뿐 아니라 야당도 문제 있다’는 식으로 논란을 희석하려는 것이, 만사의 초점은 ‘정의의 실현’에 있는게 아니라 ‘선거에서 지지 않기’에 맞춰져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의롭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다.

이를 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LH직원‘을 전수 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 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등기부만 보면서 땅 샀는지 말로 물어보는 전수 조사만 해서 뭘 밝힐 수 있겠는가”고 이 사안에 대한 정밀한 검찰 수사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그런데 이번 신도시 개발계획과 맞물린 투기 사태는 선거가 시작되기 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속전속결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입장인 것 같다. 즉 정부와 여당에게는 ‘선거 유불리’라는 가치가 ‘정의 실현’ 이나 ‘불공정의 재발 방지’ 보다 우선하는 가치인 셈이다. 그러니 거꾸로 가는 세상이고, 그런 세상에서 평범한 서민들은 매순간 마음을 졸이며 버티는 것이다. 소주성, 탈원전, 조국사태...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포장되는 아주 우스꽝스런 시대 속에서 평범한 서민들은 그저 ‘지나갈거야’ 라고 되뇌면서 부평초 처럼 이리저리 떠밀릴 수밖에….

서민들만 그런가. 정부와 지자체가 밥 먹듯 ‘리쇼어링’을 외치고 국회가 관련법을 마구 쏟아내도 기업들은 ‘오프쇼어링’만 만지작거린다. 주요 기업의 국내 유턴을 유인한다며 각종 세제 혜택에다 국공유 재산 장기 임대, 법인세 완화 등등을 목이 터지게 외치지만, 실제로는 중대재해법이라거나 이익공유제 같은 기업을 옥죄는 법은 더욱 더 강경하니 언감생심 기업이 유턴 하겠는가. 2014년 유턴법 시행 이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국내 유턴 기업은 71개, 이웃 일본은 2006년 이후 현재까지 8천개 기업이 해외에서 유턴했다. 서민들이든 기업이든 규제 일변도의 상황에선 체념하기 마련이다. 그저 이런 상황이 ‘어서 지나가라’ 라고 되뇔 밖에... 세력에 의지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긴다. 依勢禍相隨. 거대 여당은 이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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