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온갖 꽃들은 누구를 위하여 향기를 풍기는가? (百花春到爲誰香)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은 누구를 위하여 향기를 풍기는가? (百花春到爲誰香)
  • 승인 2021.03.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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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대구수목원에 가면 매화동산이 있다. 그곳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거나 유명한 지역의 매화 접수(椄穗)를 채취하여 심은 어린 매화들이 자라고 있다. 아직 작지만 나름대로 꽃을 피워서 예쁘고 향기롭다. 퇴계의 도산매, 통도사의 자장매, 백양사의 고불매, 홍매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매화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어 좋다.

퇴계는 매화를 너무나 사랑하여 생전에 매화에 관한 시만도 120여 수 가까이 된다. 69세에 우찬성에 제수되자 당시 선조에게 안동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이때 도산서당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물가 도산서당에 몇 그루 매화나무 꽃이 피어, 봄철을 맞아서 주인 오기를 기다리네, 지난해에는 황국화가 피었을 때 그대를 버렸으나, 어찌 아름다운 그 기약을 또 다시 저버리겠나.'라고 읊었다. 다음해 12월 퇴계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화분에 심은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매화를 사랑했다.

또 젊었을 때 옥당(홍문관)에 숙직을 하던 날 흰 눈이 내렸다. '옥당 뜰 앞에 매화나무가 흰 눈을 덮어 쓴 것을 보니, 풍진의 세상살이가 꿈에서 훨훨 날아서 어지럽히네. 옥당에 홀로 앉아서 외로이 봄밤의 달을 쳐다보니, 기러기 슬피 울 제 매화 생각이 애절하구나.'고 읊을 정도였다.

'… 훨훨 날아서 어지럽힌다.'는 말은 시경에 나오는 '차지(差池)'를 말한다. 아마 퇴계는 계속되는 사화로 어지러운 세상보다는 고향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한평생 글을 읽으며 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봄밤의 달을 쳐다보는 모습에서 풍진의 세상살이는 이제 영원히 잊고 싶어 매화를 은유로 많은 노래를 불렀던듯하다. 추운 겨울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의 기개를 말하며, 눈 속에서도 향기를 피우는 매향은 선비의 나아갈 바를 말한다. 당연히 선비들이 좋아하고, 화가들이 화폭에 담는 소재는 매화였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 결백, 정조, 미덕이다. 퇴계는 글을 배우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했던 조선 최고의 선비였다. 매화는 선비의 기개이다. 우리나라 천 원짜리 지폐에 퇴계의 초상과 함께 매화가 그려져 있다. '선비를 닮고 배워 마음을 바르게 하자.'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일요일 '진품명품'에 만공선사의 '백화춘도위수향(百花春到爲誰香)'이라는 선시(禪詩)가 소개되었다.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은 누구를 위하여 향기를 풍기는가?'의 뜻이다. 정답은 개인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잘 보라고 큰소리의 북을 둥둥 쳐 주어도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봄이 와서 온갖 꽃들의 향기를 내뿜어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 더러는 무응답이 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필자는 산청에 있는 삼매를 찾아 가본 적이 있었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450~670년 된 매화였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는 고사목이 되고 뿌리 옆에서 가지가 나와 자라고 있었다. 고려 말기 원정 하즙이 심은 이 매화는 '옳음'을 행하여 백성을 기쁘게 하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남사예담촌에서 얼마 멀지 않는 단속사지에는 정당매(政堂梅)가 있었다. 고려 말기 정당문학 강회백이 심었다고 한다. 정당매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천심'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멀지 않는 시천 산천재에는 남명매(南冥梅)가 있다, 조식은 퇴계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경상우도에서 이름난 선비였다. 퇴계만큼 매화를 사랑했다. 조식이 지리산을 바라보는 산천재에 심은 매화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조식은 평소 '공경(敬)은 안에서 곧게 하고, 옳음(義)은 바깥에서 바르게 한다.'는 경의검(敬義劍)을 차고 다니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선비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요즘 동백꽃도 한창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꽃도 한창이다. 앞으로 온갖 꽃들이 끊임없이 향기를 풍길 것이다.

천자문에 '감모변색(鑑貌辨色)'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용모와 말과 얼굴빛으로 그 감정을 보며 그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봄을 맞아서 가정, 학교, 사회, 국회, 청와대까지 말과 얼굴빛으로 향기를 풍기는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과 같은 말 말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어른들도 신이 나는 말과 얼굴빛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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