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로봇과 사람
[박명호 경영칼럼] 로봇과 사람
  • 승인 2021.03.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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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이제 곧 병원 복도를 누비는 로봇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달부터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국내 최초로 주사약 배송 로봇, 세탁물 배송 로봇, 환자 안내 로봇, 각 1대씩을 도입해 시범 활용에 들어갔다. 병원에서 수술로봇은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 내 배송이나 안내와 같이 종래 사람이 전담한 일을 로봇이 돕는 것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스마트의료시스템을 지향하는 동산의료원의 첫 시도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로봇시대’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편리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의 일상화도 한 몫 했다. 로봇은 지금까지 산업체나 의료분야, 탐사 분야에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일상 속에서도 로봇의 활용이 크게 늘어났다. 가정에서는 로봇이 청소를 해주고, 쇼핑도 도와주고,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폭 넓게 활용되고 있다. 금융업에서는 자산관리를 조언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콜센터에서는 대화형 메신저 로봇인 챗봇(chatbot)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로봇은 어느새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우리 삶을 전반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인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인간형 인공지능(AI) 로봇을 선호한다. 외국인 국적의 간병인 대신 로봇이 환자용 변기를 갈아 주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2007년 ‘이코노미스트’에서는 “고마워요 로봇씨(Domo Arigato, Mr. Roboto)”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R not I,’ 즉 ‘이민자 말고 로봇(robots, not immigration)’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처럼 로봇은 우리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전투용 로봇이 출현하는 등 로봇이 초래할 역기능과 위협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SF영화에서는 로봇의 다양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빅 히어로>에 등장하는 착한 로봇 ‘베이맥스’는 따뜻한 감성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해준다. 하지만 로봇이 이처럼 ‘마음이 통하는 인격체’로 진화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는 난망이다. 로봇에게는 의식과 감정이 없기에 인간과 구별될 수 있다. 로봇은 단지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사람이 명령한 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조종 대상에 불과하다.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의식적인 존재이고, 로봇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한다. 로봇은 마음의 흐름을 구성하는 의식적 경험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생각하고 느끼며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로봇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 유용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런데 로봇의 도입에는 단연코 ‘사람’ 중심적 접근이 요구된다. 로봇은 사람이 일을 쉽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한다. 일차적으로 로봇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에다 사용자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하이터치 요소도 정말 중요하다. 따라서 무슨 로봇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당연히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를 동시에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 사용자의 요구에 마찰 없이 반응하여 ‘사람’의 행복에 도움을 줄때만 로봇의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점점 로봇처럼 변해, 자기결정권을 잃어버리고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인문학자 김용규는 오늘날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에게 갈 길을 묻는 앨리스처럼 컴퓨터 알고리즘에게 살길을 묻고 있다고 우려한다.



앨리스: 내가 어떤 길로 가면 좋을지 가르쳐 줘.

고양이: 그것은 네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

앨리스: 난 어디에 가도 좋아.

고양이: 그러면, 넌 어떤 길로 가도 좋아.



기업도 ‘로봇시대’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경영자가 생각의 주도권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 경영자는 기업의 미래 비전을 치열하게 고뇌해야 한다. 비전을 현실로 바꿀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업의 존재 이유인 ‘고객가치’를 어떻게 창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최우선이다. 고객의 실질적 요구와 혜택에 제대로 부응하는 바로 그 기업이 공감을 얻고 환영을 받으며 선택된다.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과 친밀한 관계가 더욱 그리워진다.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로봇시대’에서도 기업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역시 ‘사람’ 중심의 기업 문화다. “나의 노력으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것이 내가 로봇을 만든 이유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의 말이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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