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세대 공무원이 본 공직사회는?
밀레니엄 세대 공무원이 본 공직사회는?
  • 채영택
  • 승인 2021.03.14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시, 행안부 책 요약 재발간
공직사회에 말하고픈 속마음
선배 공무원들의 고언도 전파
90년생공무원이왔다
90년생 공무원이 왔다

#“용지 여백도 안 맞고, 자간이랑 줄 간격도 엉망이네. 다시 해 와요.” “우리 과장님은 보고서를 보자마자 들여쓰기 간격이 이상하다면서 직접 자를 가져다 대시더라.” “우리 과는 과장님이 벌써 2번이나 바뀌었잖아. 새로 오는 과장님마다 보는 눈이 달라서 똑같은 보고서를 벌써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몰라.”

20·30대 공무원들의 생각을 담은 책 ‘90년생 공무원이 왔다’에서 ‘호모 리포투스’들이 한 말이다.

“과장은 ‘노안이 왔다’며 보고서의 글자를 평소보다 키우고 줄 간격은 넓혀서 가져오라 하고, 국장은 ‘종이를 아껴서 헐벗은 지구를 지켜 줘야 한다. 전체 분량 2쪽을 넘기지 말라’하고.” 박 주무관은 고민 끝에 보고서를 2가지 버전으로 출력해 결과적으로 지구는 지켜주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은 꼭 태블릿으로 보고를 받는 인간으로 진화하리라 다짐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는 책자가 화제다. 이 책에는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공무원들의 사연이 담겼다. 대구시는 젊은 공무원들이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외치는 솔직한 목소리를 듣고, 선배 공무원들의 고언도 함께 전파하기 위해 책자를 요약해 재발간했다. 90년생 눈을 통해 본 오늘날 공직사회의 일면을 살펴본다.

#회의가 끝나 갈 때까지 윤주무관에게는 단 한 번의 발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날 무렵, 국장이 윤주무관을 보며 물었다. “자, 윤 주무관. 오늘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 실무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국장님이 말씀하신 아이디어는 요즘 국민 정서와는 조금 안 맞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본심과 달리 현실적인 답변이 튀어나왔다. “네, 국장님. 신선한 것 같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발전시켜 보겠습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인 상황에서 공무원 조직의 회의란 ‘윗분들의 생각을 받아 적고, 기록하는 자리’였다.

“‘이런 회의를 회의(Meeting)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회의(doubt)라고 해야하나.” 90년대생 공무원들은 불필요한 회의 준비에 소모되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회의 관련자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일정 조율, 장소 섭외 등등 개최 준비에만 며칠이 소요된다. 딱딱하고 경직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빛나는 명패와 깔끔하게 정리된 회의 책자를 펼쳐 놓고 장시간 회의를 해야만 양질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걸까?

#유 사무관은 무조건 조직에 헌신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나라와 조직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중모드(‘나’의 일상과 행복이 중요하므로 이를 추구하며 퇴근 후 라이프를 즐기는 삶의 방식)’에 익숙한 세대는 무조건적 헌신에 당연히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 기업인 넷플릭스는 ‘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는 가족과 회사의 운영 원리가 다르며, 가족관계 같은 사적 관계보다 공적 관계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직장은 직장일 뿐 매일 마주친다고 가족 같을 수는 없죠. 또, 가족 같아서도 안 됩니다. 일하는 곳이잖아요. 적당한 거리두기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사무실에도 필수입니다. 꼭 사적으로 엄청 친하지 않아도 업무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소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현기자 oplm@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