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향한 여정에 내려앉은 묵향…양익수, 서울 개인전 내일 개막
유토피아 향한 여정에 내려앉은 묵향…양익수, 서울 개인전 내일 개막
  • 황인옥
  • 승인 2021.03.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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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반추상으로 숲 구현한
‘유토피아를 찾아서’ 연작 첫선
기존 화려한 색 대신 무채색 사용
“묵향 깃든 현대미술 지속 추구”
양익수 작가
 
 
양익수작-유토피아를찾아서
양익수 작 ‘유토피아를 찾아서’
 
양익수작-유토피아를찾아서-2
양익수 작 ‘유토피아를 찾아서’

개념미술의 활황으로 아이디어의 역할이 손맛 못지않게 치고 올라오지만, 작가 양익수는 여전히 투박한 손맛의 정겨움을 신봉한다. 40여년을 붓의 조홧속에서 웃고 울었지만, 그때마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특히 숲이 손끝에서 회화의 감칠맛으로 숙성될 때면 탄성이 터졌다. 그가 "그림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본 것을 그리는 작업"이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마음 상태가 붓끝을 타고 흘러 그림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순간은 언제나 마법입니다."

20년을 숲에 매달리자 '숲'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수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사연으로 숲을 그리지만, 그는 숲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한다. 피톤치드가 코끝을 달굴 듯이 빼곡한 화면 속 숲 언저리에,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작은 오솔길에 자박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작가 자신인 것. "제 작품의 주제는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숲에 몸을 기대 살아간다. 숲에 깃든 생명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을 거듭하지만, 숲은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숲의 '항상성'이다. 숲은 무엇을 요구하기 보다, 누구에게든 온몸을 내어준다. 작가는 바로 숲의 그 궁극의 초월 상태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한다. "숲이 품어 안는 넉넉한 생명력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마지않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어요."

서울 인사동 AP갤러리에 양익수 초대개인전이 17일 개막한다. 전시에는 이번 전시에 첫선을 보이는 숲을 미니멀한 반추상으로 구현한 '유토피아를 찾아서' 연작을 건다. 그가 "이번 작품들은 서양의 물감으로 그린 동양 회화적 성격이 짙다"고 했다. 작가는 동양서예의 획이나 문인화의 절제미로 숲을 구조화한다.   

그가 "붓의 흔적과 묵향 가득한 한국적 현대미술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이나 원뿌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작품은 그 길 어디쯤에서 만난 결실"이라고 언급했다.  

몇 획의 붓 터치로 숲의 생명력에 물이 오른다. 그 절제미를 얻기 위해 20여년을 치열하게 내달렸다. 하지만 정작 감상자는 심드렁하다. "저 정도는 화가가 아니어도 그릴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숲의 전경이 단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들어내고, 비워내며 욕망을 줄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며 그간의 산고가 녹록치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의 단촐함은 가득찬 후의 비워내기에 해당됐다.  

절제된 숲은 '정신성'과 맞물린다. 표피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 세월을 20여년을 보내면서 가슴 한 켠에 순수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세력을 키워갔고, 내면으로의 날개짓이 시작되면서 화면은 '정신성'으로 물들어갔다.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하수로 여겨"졌고, "이제는 외부가 아닌 나의 내부에서 유토피아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정신성'을 기반으로 하는 반추상으로 돌아서게 이끌었다.  그가 궁극으로 향하는 길의 끝에는 '완전한 추상'이 자리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배움에 대한 갈망이 더 솟구쳤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깨달음이 왔어요. 그러자 비워내고 드러내는 연습이 시작되었죠. 계속해서 더 단순화해 질 겁니다." 

이번 신작에서는 무채색 숲이 대세를 이루지만 사실 그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다. 세상의 색이란 색은 모두 지배할 수 있다는 듯, 그의 숲은 총 천년 색채의 향연으로 넘실댔다. 핏빛을 닮은 벚꽃이 합창하듯 흐드러지고, 하얀 가지에 푸른 머리를 산발한 자작나무는 보랏빛 배경에 윤이 났다. 

작업 기법에서도 한계를 두지 않았다. 뿌림과 번짐, 입체 등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한 화면에 다양한 기법을 화음처럼 엮어내기도 했다.  

색채나 기법에서 다양함을 추구했지만, 늘 목이 말랐다. 붓을 놓아야 하는 시점에도 미련이 발목을 잡았고, 화면은 욕심으로 가득찼다. 그럴수록 화려함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고, 내적 울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욕망이 정점을 찍을 때쯤 "이건 아니다"라는 자각이 들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은 컸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방황과 고뇌의 시간으로 훌쩍 1년이 보내던 즈음에 노랗게 물든 성모당의 가을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 풍경 앞에서 다시금 붓을 잡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회오리쳤다. 작품 '유토피아를 찾아서'와의 만남의 순간이었다. 

산고의 고통은 길었지만 작품 '유토피아를 찾아서'를 만나자 보이지 않던 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길을 찾았다는 만족감으로도 마음속에 평안이 깃들었다. "'묵향 가득한 현대미술을 그리겠다'는 방향성은 잡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갈지는 저 자신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매진하겠다는 열정 만큼은 이전보다 더 강렬한 것 같습니다." 전시는 2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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