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에 싸인 정의
배일에 싸인 정의
  • 승인 2021.03.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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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LH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민은 자신들의 실생활과 연관성이 높은 입시비리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LH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과 겹치면서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다. LH사태는 이미 수면위로 올라왔고 법적인 문제이므로 정치적인 득실을 떠나 공정하게 처리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 그리고 직접 논의를 주도했던 집단들이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순론처럼 부조리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여당과 야당이라는 입장(立場)의 차이와 5년 동안 국정을 책임진 문재인 정부의 국정 메시지가 주는 모호성이 아닐까 한다.

우리 사회는 토지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분배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원칙을 정립했다. 이것은 농민이 아닌 사람들이 투기적인 목적으로 농지소유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과 농지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농업인과 농업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비영농인이 농지를 구입하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영농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법을 통한 토지 구입으로 인사청문회때 구설수에 오르는 인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퇴임 후 거주할 공간을 위해 아들 이시형씨의 명의로 내곡동 사저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인해 치러지는 10.26 재보궐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내곡동 사저 계획을 백지화하기로 발표했다. 역사는 돌아 이번에는 LH 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제기된 토지 대부분이 농지로 밝혀지면서 지난 2020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의 사저 농지 매입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야당이 된 국민의 힘에서 문대통령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으며, 문대통령도 페이스 북을 통해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토지문제가 민감한 것은 지속적인 지가상승과 토지소유의 편중이 분배의 불평등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로는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이 결성되었고, 지가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 중 기대수익률보다 초과되는 경우 불로소득으로 보고 세금으로 환수하는 법도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득은 토지와 아파트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회적 파장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의 프리미엄으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의 모호성이다. 문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어느 사회에도 부의 불평등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소득분배정책을 펼쳐왔고, 그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집권층이 어떤 철학적 관점에 동의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철학적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그 결과로 이어지는 분배는 정당하다고 본다. 반면 평등주의자들은 비록 사람들이 능력이나 노력, 기여 등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해도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므로 소득과 부도 원칙적으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부의 불평등이 발생해도 정당하다고 보는 반면 평등주의자들은 아무리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해도 그 결과로 부가 불평등하다면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그 결과는 정의롭다는 말에서 정의는 베일에 둘러 싸여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하산 길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큰 배신자는 항상 내부에 있듯이 권력이 분화되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비밀들이 햇빛을 보게 된다. 문재인 정부 지지 여부를 떠나 퇴임 후 대통령의 문화를 보고 싶은 것이 국민들의 작은 소망이다.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 해도 5년 단임이므로 이미 쌓아 놓은 돌탑을 허물고 다시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LH사태를 기회로 삼아 그동안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룬 사회적 합의를 살펴보면서 왜곡되고 편향된 정책은 바로잡고 역사와 화해를 하면서 남은 1년을 마무리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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