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이 있다면 인권을 침해해도 되나…실화 기반 ‘모리타니안’
명분이 있다면 인권을 침해해도 되나…실화 기반 ‘모리타니안’
  • 배수경
  • 승인 2021.03.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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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9.11 테러 배후로 지목
관타나모에 14년 수용된 남자
비난 참고 그의 편에선 변호사
사형을 구형하려는 군 검찰관
슬라히의 결백에 집중하기보다
각자 방식으로 진실 향해 직진
주디 포스터, 타하르 라힘,  베네딕트 컴버배치(왼쪽부터)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110층짜리 북쪽과 남쪽 타워가 항공기테러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아있는 9.11테러. 영화 ‘모리타니안’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쿠바의 미군 기지 내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북서아프리카 모리타니의 바닷가를 평화롭게 거닐던 주인공이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인권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기소는 물론 재판도 없이 6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슬라히(타하르 라힘)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변호를 맡게 된다. 테러범을 변호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설령 유죄라 할 지라도 누구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9.11테러로 친구를 잃은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에게 사형을 구형할 적임자로 선택된다.

이쯤되면 영화가 테러 배후범으로 지목된 한 남자의 유무죄를 가리는 치열한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그보다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휴먼드라마의 모양새를 보인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관객은 슬라히가 테러범의 배후가 맞는지 아니면 무고한 시민인지 알 수 없다. 경찰에 연행될 때 다급히 휴대폰 연락처를 지우는 모습에서 막연하게 그가 유죄라고 짐작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변호사 낸시와 군 검찰관 카우치 두 사람의 목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라히의 자백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에 닿기 위해 애쓴다. 결국 드러난 진실을 마주한 두 사람의 행보도 흥미롭다.

알 카에다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고 빈 라덴의 전화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는 것으로 슬라히의 유죄를 단정짓고 자백을 얻어내기까지의 과정은 충격적이다. 고문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시각효과와 음향효과만으로도 관객들은 마치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공포와 불편함을 경험하게 된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교도관이었던 닐(제커리 레비)은 “누군가는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해”라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한다. 이에 대한 카우치의 답은 “그래 누군가. ‘아무나’가 아니고.”이다.

테러를 사주하고 자행한 누군가(someone)가 대가를 치뤄야 하는건 맞지만 그런 명분 아래 ‘아무나’(anyone)에게 죄를 덮어 씌워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가’,‘자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다면 어떠한 일도 정당화되고 용인될 수 있나’하는 묵직한 질문도 함께 던지게 만든다.

재판정에서 슬라히는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단어다. 그러기에 갇힌 이곳에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니 신이 당신을 용서하고 함께 하시길”이라 말한다. 

영화가 끝나면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쿠키영상이 등장한다. 자유의 몸이 된 슬라히가 밥 딜런의 ‘The Man in Me’를 부르며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타하르 라힘과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배우들의 열연이 몰입력을 더해준다. 조디 포스터는 이 영화로 제 78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국아카데미에서 각색상, 작품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모리타니안’은 15일(현지시간) 후보를 발표한 미국아카데미에서는 아쉽게도 한 개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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