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떠보니 선진국 (1)
눈떠보니 선진국 (1)
  • 승인 2021.03.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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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사회부장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같은 선진국’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이미 부유한 선진국이므로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더 내라’며 몰아부쳤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이 됐음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배가 고프다. 선진국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최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 이유는 이유를 묻지 않고 베끼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발국의 이점은 시행착오를 거친 선진국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선진국이 되면 더 이상 베낄 곳이 없게 된다. 2천년 초반까지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해가 안되면 외워라’는 식이다. 답은 항상 주어졌고 주입식 교육에서 말이 많으면 ‘빨갱이’였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에 코로나 매뉴얼을 배포한 나라다. 우리가 이제 기준을 만들어야 진정 선진국이 된다.

신뢰자본이란 말이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카페나 탁자위에 노트북, 휴대폰을 놔두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천달러를 테이블위에 놓고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열차를 탈 때 검표를 하지 않는다. KTX 승무원이 무선단말기를 들고 표 팔린 자리만 확인한다. 과거에는 모든 자리를 검표했고 승객들은 검표를 위해 미리 가서 줄서고, 철도청은 표를 인쇄하고 날짜마다 표 색깔도 다르게하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모든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고 의심하는 데 쓰는 비용이 엄청났다. 모든 사람을 신뢰해서 사회적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신뢰자본이다. 그대신 무임승차로 잡히면 10배~30배 요금을 내야 하는 징벌적 배상제가 있다.

한국의 신뢰자본은 서울역에서 멈추고 더 이상의 제도나 운영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사회에서 신뢰도가 10% 올라가면 경제성장율이 0.8%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었다. 2020년 우리나라의 GDP가 1천 898조였는데 이 금액의 0.8%면 GDP 1조 5천억원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신뢰자본이 작동하지 않는 예를 보자. 정부는 RND 투자에 매년 20조 정도를 투입한다. 투자를 받은 연구원들이 연구를 해야 할텐데 그 시간에 영수증을 정산하고 진도를 보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기관은 받은 돈을 어디에 썼나 영수증을 보며 따져보는데, 기관마다 포맷도 다 다르다고 한다. 정부 투자를 몇 번 받으면 연구에 전문가가 돼 있는 것이 아니라 정산 리포트 작성에 도사가 돼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이런 연구의 과제 성공률 거의 100%다. 민간에 연구과제를 맡기는 이유는 리스크가 큰 어려운 연구이기 때문인데 이런 어려운 연구가 매번 100% 성과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또 이런 연구결과가 실제 특허로 상용화 되는 비율은 우리나라가 매우 낮다.

선진국은 꼼꼼하게 대상자를 추려서 우수 과학자에게 그냥 준다. 생활비로도 쓰면 되고 3년에서 5년 뒤 연구성과를 보고 결과가 좋으면 또 준다. 영수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본다. 과학적 발명은 천개나 만개 중에 한 개만 성공하면 나라전체가 먹고 살게되므로 신뢰자본을 쓰는 것이다.

형편없는 결과를 내면 다음에 연구비를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연구비 남용이 드러나면 30배의 배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왜 신뢰자본이 잘 돌아가지 않을까. 2011~2013년 경제사범 재판통계를 보자. 1천 300여건의 범행 가운데 액수 300억원 이상 범죄를 저지른 11명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총수나 경영자 등 최고위층은 70% 이상이 집행유예였다. 집행유예는 참작사유를 판결문에 적게 돼 있는데 박태웅 의장의 조사결과 참작사유를 제대로 적은 것은 5%에 불과했다. 박의장은 “300억이 넘었으니 집행유예 준다. 고위직이니 집행유예 준다고 쓸 수 없어 못 적은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독일 형법조항에는 ‘법질서를 방위해라. 국민들의 법에 대한 믿음을 거슬러서 는 안된다’라고, ‘이를 거슬러 집행유예를 하면 안된다’고 돼있다. ‘경제범죄, 탈세, 화이트칼라, 공권력 범죄는 되도록 집행유예하지말고 실형선고하라’고 돼 있다. 우리는 정반대다. 신뢰자본을 제대로 쓰면 사람들이 편하고 경제도 성장해 빨리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데 기득권 앞에서는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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