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사내 하나
평생에 사내 하나
  • 승인 2021.03.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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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평생에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

무슨 말끝엔가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물론 그 사내는 내 아버지지만
나는 의심스러웠다

혹시 단 하나의 그 사내에 질렸음인가
평생에 사내 하나 아버지는 가고
하나뿐인 사내는 끝이 나서 이 세상에 없고
당신의 그 평생은 너무 짧았는데

설령 마파람 부는 마흔 살 고개에
혹할 것이 없어도
그 뒤로 수십 년 두 팔 저어 원망할 누구 하나 없어도

평생에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는 말
나는 솔직히 섭섭한 적도 있다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
당신의 서릿발 같은 지조 흔들리지 않으려고
지긋지긋한 것처럼 몸서리나는 것처럼
징그러운 벌레라도 떼어내듯 내동댕이치듯

평생에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고
지레 깃발처럼 흔들었을까, 어머니는.

평생에 사내는 하나로 족하다고/ 지레 깃발처럼 흔들었을까, 어머니는.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아버지에 대한 지조를 선포하고 시종일관하신 어머니는 결코 지긋지긋한 몸서리나 징그러운 벌레 같은 감정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질려서가 아닌 그에 대한 어머니의 순정이 마름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것일까. 자식으로서 그런 서릿발 같은 지조의 어머니를 보는 것이 못내 안타까움이 드러나는 글에서 같은 역성을 들게 된다. -정소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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