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학과 과학적 검증의 가치
전통의학과 과학적 검증의 가치
  • 승인 2021.04.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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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 원장

한의학을 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아직도 현대의학을 '양의', '양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은 한방의 반대로서 지칭하는 것이라면 '양방'이라고 불러도 어문법상 틀린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양방'이 '현대의학'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굳이 양방이라고 불릴만한 서양 의술은 히포크라테스의 4 체액설을 기본 바탕으로 17세기까지 2000여 년간 서양에서 통용되던 서양 전통의학 정도일 것입니다. 4 체액설은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라는 네 가지 액체가 인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불균형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봤습니다. 신의 형벌이 곧 질병이라고 봤던 그 이전의 통념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개혁적인 발상이었고 말 그대로 그럴싸했으며 딱히 반론을 제기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20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동양과는 달리 서양, 특히 서구 유럽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엄청난 과학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하늘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럴 싸'한 것이겠지만 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럴 싸'한 것에 대한 의심과 검증이라는 과학혁명에 불을 지폈습니다. 물론 지동설이 주류 천문학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으로 이어지는 약 200여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시작된 거대한 과학적 진보는 다른 학문 분야로 이어져 갔으며, 그 중에서도 생물학과 화학의 발달은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인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생명이 유지되는지 그 기본 틀을 밝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양의 전통의학이 현대의학에게 그 주류의 자리를 넘겨주게 된 과정은 그 동안의 '그럴 싸'했던 여러 이론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추가할 것은 추가한 역사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뿐만 아니라 서구유럽을 제외한 많은 지역의 전통의학은 과학적 검증이라는 과정을 도입할 기회도, 여유도 없이 근대사를 맞이했습니다.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아스피린과 같은 항혈전제를 수술 전 일정 기간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약재 또한 중단하라고 권유합니다. 사실 어떤 한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그 약제가 혈액응고 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는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으니 일단 끊으시라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버드나무가 서식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는 민간 요법 중에 치통이 있을 때 버드나무 껍질을 아픈 부위에 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후 과학적 검증을 통해 버드나무껍질에 있는 살리실산이라는 성분의 진통 효과가 밝혀졌고, 화학 공정을 거쳐 살리실산을 합성해서 만든 약품이 바로 아스피린입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그 진통 효과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이어갔고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COX 효소가 대뇌피질로 통증을 전달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합성하는데, 살리실산이 이 과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살리실산이 혈액응고를 방해한다는 사실과 함께 복용한 살리실산이 체내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 7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적정 용량을 밝혀내면서 혈전을 예방하는데 활용하게 되었지만 출혈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수술 전 7일 정도 복용을 중단시키는 근거도 마련했습니다.

혈액 순환에 좋다고 버드나무 껍질을 우려낸 물을 마신다면? 그리고 그 와중에 크게 다치거나 수술을 받게 된다면? 원인도 명확히 모른 채 과다출혈로 위험한 고비를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전통의학에 의해 특정효과가 알려진 물질을 어떤 유효성분에 의한 것인지 다시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그 작용기전을 밝혀내고, 투약 용량별로 어떤 순작용과 부작용이 있는지, 어떤 경우에 이 성분이 오히려 인체에 해가 되는지 등을 밝혀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대 의학의 스펙트럼 또한 더욱 넓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의학이 수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누적한 임상사례와의 상관관계를 고려해본다면 분명 효능이 있는 치료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임상 사례를 과학적 검증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현대 과학 사회애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이론적 토대만 고수하면서 과학적 검증과 취사 선택 과정을 소흘히 한다면 전통의학의 소중한 임상경험을 역사의 강물에 흘려보내는 아쉬운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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