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은행나무
  • 승인 2021.04.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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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황금갑옷 갈아입고 달려 나갈

군마의 발굽처럼 서 있다

열 두 바퀴 지구를 돌아

천왕문 밖 서역에서 막 돌아온 듯한 몸통

왕관 쓴 이서국 후투티가 드나드는 구멍

헐거워졌다

늙은 말을 버리고

젊은 말을 갈아타지 않았다는 거짓말들

노랗게 깔아 둔 깃발자락으로

농익어 떨어지는 쿰쿰한 불평들

고스란히 받아 주고 있다

부동의 몸짓 800년에 손을 대면

복속을 견딘 이서국 군마 발굽 냄새

물컹하다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수상, 대구문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두근두근 캥거루’

<해설> 마치 800여 년 전의 이서국 궁성지에 서 있던 은행나무를 보는 듯하다. 이제는 그 왕국의 정령이 된 듯, 후투티의 방문만 무심히 바라보는 노거수의 모습에서 유수와 같은 세월과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시인은 애잔한 마음을 물컹해진 군마의 발굽냄새에 잔뜩 담아 두었다. -정소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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