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극복한 사진으로 되짚는 역사…갤러리 토마, 이수철 흔적과 빛展
시간을 극복한 사진으로 되짚는 역사…갤러리 토마, 이수철 흔적과 빛展
  • 황인옥
  • 승인 2021.04.06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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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에 과거와 현재 중첩 표현
장소가 가진 기록적 요소 강조
군산역-日 동경역 나란히 전시
온도차 있는 양국의 기억 부각
다시-이수철작-군산세관
이수철 작 ‘군산세관’
 
다시-이수철작TokyoDome유원지
이수철 작 ‘Tokyo Dome 유원지’

일본의 동경역과 한국의 군산역 사진이 갤러리 토마 전시장에 나란히 걸렸다. 동경역과 군산역은 일본과 한국의 건축물이라는 태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이질감은 없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근대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라는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두 건축물 사이에는 차가운 인식차가 존재한다. 일본인에게 동경역이 근대화의 상징으로 부각된다면, 한국인에게 군산역은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상흔으로 기억된다. 이는 침략국과 피해국이 느끼는 온도차이자, 사진작가 이수철의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역사인식이다.

이수철 개인전이 갤러리 토마에서 열리고 있다. 2018년 6월 토마 전시 이후 두 번째 대구 전시다. 이수철 예술의 핵심 개념은 ‘비동시성’이다. ‘비동시성’은 한 장의 사진에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사진의 한계인 ‘시간성’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방법론이다. 작가는 특정 장소의 4계절 촬영하고, 디지털을 활용해 4 계절 촬영한 사진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중첩하며 ‘비동시성’을 구현한다.

대구 첫 개인전에서 제주풍경을 ‘비동시성’으로 담아냈다면, 두 번째 대구 전시인 ‘흔적과 빛’전에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비동시성’이 추구된다. ‘장소’에 ‘기억’을 대입해 전에 없던 서사를 덧입힌다. 전작에서 제주 풍경이라는 객관 풍경으로 개인적 서사를 개입시키지 않았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가 스며있다. 일본 유학 시기의 기억과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기억이 피사체에 아로새겨진 것.  

‘장소’와 ‘기억’은 두 가지의 단계를 거치며 서로 맞물린다. 먼저 첫 번째 단계에서 작가 개인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가 유학 시기에 동경에서 마추졌던 장소들이 피사체로 선택되는데, 그 즉시 그 피사체는 추억 소환의 매개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개인의 기억이 사회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단계는 두 번째 단계다. 작가는 한국인이 일본에서 연상할 수 있는 개념, 즉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확장된 프레임으로 가져온다. 그는 이 프레임에 따라 군산이나 인천의 근대건축물을 피사체로 선택한다.

“개인적 의미와 한국사회의 역사적 의미로 남아 있는 장소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업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기억은 퇴행되지만, 어떠한 사건의 날짜나 장소에 의해서 다시 기억이 각인될 수 있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었다.”

사진의 기록적 속성은 다큐멘터리 영역에 해당된다. 사진이 기록의 산물에서 예술의 결정체로 격상하기 위해서는 ‘미학적’ 고찰이 병행돼야 한다. 기록적 속성에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추가돼야 한다. 그가 미학적 장치로 지목하는 요소는 ‘서정’이다. “건물의 연혁을 살피며 장소가 가진 스토리를 상상한 후에 앵글을 잡는다. 그 장소가 가진 역사성을 최대한 포착하면서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담아내는 것이 나의 최대 고민거리다.” 이번 전시 제목 ‘흔적과 빛’에는 역사적 사실과 미학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매체는 다양하다. 노래 등의 청각적인 장치일 수도 있고, 패션 등의 시각적인 장치일 수도 있다. 작가는 기억 환기 장치로 ‘장소’에 주목한다.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역사적 시간을 머금고 있는 ‘장소’야말로 잊고 있던 기억을 단숨에 환기하게 이끄는 최적의 매체라는 것. 작가의 장소를 향한 믿음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간다. 장소를 통해 ‘오류’나 ‘왜곡’ 등의 기억이 품고있는 추상적인 개념까지 건드린다. 기억을 향한 그의 인지상태는 중첩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인 ‘흔들림 현상’으로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존재하는 사실을 환기하려면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시각적 강렬함을 따라오지 못한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시간적 개념으로 표현한다.”

그가 군산이나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에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선명하게 떠올렸지만, 도쿄돔이나 긴자거리에서 침략국 일본의 이미지를 연상하지는 않는다. 동경에서 마주한 피사체에서 그가 느끼는 서정은 꿈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고군분투하던 청춘시기의 열정이다. 그 서정이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되면서 아픔의 역사로 치환된다. “나의 추억이 묻어나는 일본의 장소와 일본으로부터 연상된 한국 내 근대문화유산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 차원의 정서로 출발했지만 역사적 차원의 무거운 정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을 촬영하면서 또 한 번의 개념적 확장을 경험한다. 내친김에 일본 내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을 촬영하며, 두 국가의 근대문화유산을 비교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해자인 일본의 기억과 피해자인 한국의 기억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는지를 고찰한다. “일본과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을 비교하면 역사적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본에 소재하는 190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근대문화유산을 조사해 놓았다. 코로나 19 사태가 종식되면 그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는 이수철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꾸린다. 작가가 미학적 사진학교에서 키운 아마추어 사진작가 고태영, 김미자, 김현재, 이영화, 황미라가 참여하는 ‘던져진 존재’전이 예술상회 토마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1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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