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별천지는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중국인의 별천지는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윤덕우
  • 승인 2021.04.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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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복사꽃 이야기
도연명의 도화원기·장지화의 어부사·도원결의…
작품에 ‘신선의 꽃’ 담아 이상세계 향한 염원 표현
4월 초 잦은 봄비로 봄 꽃들이 피고 짐이 속절없이 빠르기도 하다. 그래도 그들 나름의 순서가 있는지 다음 그 다음 차례로 시절의 꽃들이 그 자리를 메꾸어 주니 봄에 대한 설램은 여전하기도 하다.

필자가 일하는 곳은 지금 진한 분홍빛의 복사꽃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곧 경산 자인의 벌판이 무릉도원이 될 듯하다.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도연명(陶淵明 중국의 시인 365년~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온 말이다.

‘도화원기’의 내용을 보면 “민물고기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없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작은 산이 가로 막고 있다”고 했다. 계곡물이 솟아나는 수원지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을 지나니 복사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고, 어부가 발견한 무릉도원 마을 사람들 또한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한 사람들이었다. 어부는 이미 지금의 시대가 한(漢)나라를 지나 위나라 진나라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대략 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전했으나 그 마을 사람들의 세상에 자신들의 마을이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으며 그 이후 어부는 다시 그 마을을 찾으려 했으니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 평화로운 마을이 바로 무릉도원인 것이다.

무릉도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세상의 담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도연명 자신의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우리 그림 속 무릉도원이 펼쳐진 곳으로 돌아와 보자. 도화원기의 내용이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안견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1447년 제작 견본수묵담채 106.5X38.7cm 일본 나라현 덴리 대학 중앙 도서관소장

안평대군의 꿈속에 도원(桃園)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경에게 설명하여 그린 그림인데 자연스러운 현실세계와 오른편에 배치된 환상적인 도원(桃園)의 세계가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현실세계는 부드러운 토산(土山)으로 이루어져 있고, 도원의 세계는 기이한 형태의 암산(巖山)으로 형성되어 현실과 이상이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세상에도 저런 곳이 있을까? 어딘가에 있을 듯 하지만 쉽사리 갈 수 없는 그곳! 그래서 늘 가슴 졸이며 찾아 헤매는 곳,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 이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눈앞에 복숭아 꽃 장관을 보면서 신기루처럼 이 곳 이었다가 저 곳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 그 곳 일수도 있겠다는 어쭙잖은 깨달음으로 무릉도원을 마무리해본다.

중국 당나라 시인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라는 시를 소개한다.

西塞山前白鷺飛(서색산남백로비), 서색산 앞에는 백로가 날고,/ 桃花流水?魚肥(도화유수궐어비). 복숭아꽃이 흐르는 강물 쏘가리는 살이 오르고/ 靑?笠, 綠?衣(청약립, 녹사의), 푸른 댓잎의 삿갓, 푸른 도롱이 옷/ 斜風細雨不須歸(사풍세우불수귀). 비껴드는 바람과 가랑비에도 돌아갈 순 없네

아래 그림은 이시의 한 구절인 ‘도화유수궐어비(桃花流水?魚肥); 복숭아꽃이 물위를 흘러갈 때 쏘가리가 살찐다.’는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그림의 배경에 등장하는 복숭아꽃은 신선의 꽃이다. 그리고 쏘가리 역시 중국어로 ‘퀘이유, 궤이유이‘라고 불렀는데 고귀하고 여유가 있다는 뜻의 ’귀여(貴餘)와 같은 음이다.

장지화의 시에서도 여전히 복숭아 꽃이 피는 곳은 도연명의 그곳과 그 의미가 비슷한 듯하다.

 

어해도 병풍 중 일부 69 X37cm 지본채색, 19세기후반 계명대학교 박물관 소장

복숭아 꽃과 관련해서 도원결의(桃園結義)라는 말도 있다.

도원결의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주인공 세 사람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의를 맺으며 장비 집 뒤뜰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말, 종이돈 등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며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걸기로 하늘에 맹세를 했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삼국지 정사에는 없으며 역사학자들도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왜 하필 복숭아꽃이 만발한 그 곳에서 맹세를 했을까? 도화원기처럼 이상향에 존재하는 나무이고,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을 배경으로 하여 연분홍 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곳에서 어떤 결의를 하였든지 어떤 맹세를 하였든지 간에 그 끝은 아름답고 풍성하게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탐스러운 복숭아 열매처럼 그들의 염원은 자라나고 익어갔을 터이다. 나라를 구하려는 그들의 의기에 신성스러운 복숭아 나무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초라하고 건조한 장면이 연출되었을까!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은 그렇게 복숭아처럼 익어갈 그들의 꿈과 이상을 도원결의로 그려놓았다.
 

삼국지연의도 채용신 작 1912년 견본채색 169 X183 cm 조선민화박물관소장

복숭아나무 열매는 신선들이 먹는 선과(仙果)이니 더욱 귀하고, 그래서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3,000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맺힌다는 복숭아를 훔쳐 먹은 벌로 500년 동안 돌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도 이러한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벽도도(碧挑圖) 중국 송나라 작가미상 24.8 X 27cm 베이징 고궁박물관 소장

오늘 나는 복숭아꽃 아래서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 도연명이나 장지화처럼 자연에 묻혀 도를 닦아야 하는가…. 고민스러운 봄날이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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