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안 닿는곳, 우리가 어루만져야죠”
“복지 안 닿는곳, 우리가 어루만져야죠”
  • 한지연
  • 승인 2021.04.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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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무료급식소 풍경
중구 성모자애원 요셉의집 앞
아침부터 어르신 300명 줄지어
1989년부터 쉬지 않고 운영
노숙인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
요셉의집무료급식소1
12일 오전 대구 중구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 요셉의집 무료급식소 일대에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독거노인 등 300여 명이 차례대로 줄을 지어 섰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행여 추울까 옷깃을 여며주는 한쪽 손길이 푸근했다. 남은 한 손으로는 해초 무침과 김치, 김자반 등 각종 반찬과 뜨뜻한 밥 한 공기가 담긴 도시락을 건넸다.

“쌀쌀한데 왜 이리 춥게 입고 오셨어? 속 채우려고 나오셨으면 옷도 단단히 입고 오시지.”

도시락을 건네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던 권경숙 수녀가 애정 섞인 잔소리를 이어갔다. 요즘 끼니 챙기기엔 어떠한지, 혹 아픈 구석은 없는지 안부를 물어가면서다.

권 수녀가 쥐여 준 도시락을 손에 꼭 챙긴 한 노숙인은 약간 해진 마스크 너머로 너털웃음을 들려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챙겨 먹죠. 코로나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12일 오전 대구 중구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 요셉의집 무료급식소 앞.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독거노인 등 300여 명이 차례대로 줄을 지어 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간격을 둔 이들의 행렬은 약 700m가량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여파로 도통 무료급식소를 찾기 힘들어졌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급식소를 들리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대구지역 50여 개의 무료급식소 각처가 문을 내린 가운데 성모자애원 요셉의집은 지역 무료급식소의 꽃이 됐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쉬지 않고 문을 열어둔 덕분이다.

최근 들어 하나둘씩 여타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이나 간편 끼니 등을 전하고 있긴 하지만 예년만치 않다.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성모자애원 요셉의집은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무료급식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매주 5일 동안 오전 7시부터 300인분 이상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더 나누지 못하는 데에 대한 ‘아쉬움’과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작은 안도’이다.

권경숙 성모자애원 수녀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자영업자분들이 일부 후원을 멈추기도 했지만, 어려운 상황 더욱 힘을 내자며 후원을 지속해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권 수녀는 “문을 여는 무료급식소 수도 현저히 줄었고 코로나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경제 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무료급식만을 기다리는 분들이 늘어났다”면서 “도시락을 받아가지 못한 분에게는 컵라면이나 빵 등을 드리고 있다. 지역 복지가 닿지 않는 곳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전했다.

요셉의집 무료급식소를 종종 찾아온다는 동구 신천역 한 노숙인 최모(81)씨는 40분을 넘게 걸어서 이곳 급식소를 방문한다.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를 찾기 어려운 요즘 요셉의집 무료급식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안식처라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내가 아는 무료급식소는 여기만 운영되거든. 근데 밥맛도, 반찬도 다 좋아. 이렇게 나눠주면 우리는 고마울 따름이지.”

최 씨는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옛날이나 고철 줍고 일용직도 했지 요즘 같은 때엔 이마저도 힘들고 몸도 아파 신통찮다. 하루 이틀에 한 끼라도 챙겨 먹으려면 여기(요셉의집 무료급식소)로 와야 한다”며 “얼른 코로나가 종식됐으면 좋겠다. 없는 사람들에겐 코로나가 지옥”이라고 했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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