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대구사진비엔날레
[문화칼럼] 대구사진비엔날레
  • 승인 2021.04.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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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비엔날레(Biennale)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전시를 뜻한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장 전통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비엔날레가 열린다. 지난 2018년 대한민국 3대 비엔날레로 선정된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와 대구사진비엔날레 외에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수 십 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비엔날레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여기저기에서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전시가 열리다 보니 뭔가 아리송하기도 하고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도 많은 사람들은 벅차한다. 이 시점에 '동시대 미술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다고 할 수 있는 비엔날레가 과연 나에게 또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2006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 여덟 번째로 이번 가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1회 때는 10개국 60여명의 작가와 함께 열흘간 개최되어 지금 잣대로 보면 조촐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회를 거듭하며 규모는 많이 커졌지만 세상사 그렇듯이 대구사진비엔날레도 부침이 있었다. 몇몇 선구자의 노력으로 사진비엔날레가 세상에 나왔고 3회까지 국내감독 중심으로 틀을 잘 다져나갔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최초의 외국 감독 샬롯 코튼의 지휘아래 2012년 제4회 비엔날레는 최고 평가를 받으며 정점을 찍었다. 그 뒤 5회, 6회 까지는 하향곡선이 가팔랐다는 평이다. 저점을 찍은 뒤 7회 때는 예산이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광주, 부산과 함께 우수 비엔날레 등급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등락에도 불구하고 사진예술의 가치가 훼손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영상 문제로 인해 사진의 본질을 다소 가린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비엔날레와 달리 대구는 사진 한 가지로 열고 있다. 대구가 아무리 음악, 문학, 미술, 국악, 무용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저변과 뿌리가 넓고 깊다 해도 사진 하나만으로 비엔날레를 열겠다고 생각한 당시 주역들의 용기가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용기는 만용이 아니었다. 충분한 저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흔히들 '원조', '메카' 라는 단어를 쓰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살짝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 역시 한국 사진의 메카라고 불렸다. 그런데 대구는 이름만의 메카가 아니었다. 한국 사진 1세대의 최고 선구자 최계복, 안월산, 구왕삼 세분이 대구 사진인 이다. 그 후에도 기라성 같은 작가분이 많이 배출되었다. 메카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고 넉넉하다. 이런 뿌리가 있었기에 대구가 사진 하나로 비엔날레를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존재의 의의에 대한 물음에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한다. 사진이 왜 필요한지.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 왔을 때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을 과연 밝힐 수 있을지. 예술의 긍정적 기능 중 치유에 대한 능력에 대하여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기능을 가진 예술은 얼마나 존재할까라는 의문 또한 모두들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의술로도 치유라는 경지에 도달하기 힘들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전이 열렸다. 프리다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 시켰다는 평을 들을 만큼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런 그의 대표작 '부러진 척추'는 특별히 별도의 부스에 전시되었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틀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물방울 소리에서 칼로의 고통을 절절이 느꼈고 관객역시 눈물을 흘리며 치유의 경험을 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한 분은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관에서 얀 파브르(파브르 곤충기 저자 장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의 작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21세기 버전'을 감상하고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이런 강렬한 체험은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영혼이 맑은 사람에게 오는 것?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작품에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이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고 소설가 김연수는 말했다. 이런 빛이 아니면 예술이라 할 수 없다. 예술이라면 빛이 되어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왜? 라는 물음에 답할 말이 없다. 빛을 만들기에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모두가 애정으로 쓰다듬고 지혜를 보태야 대구사진비엔날레를 '빛'나는 존재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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