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메말랐나 보다
바람만 불어도 버스럭거린다
버스럭거리다가 혼자 찢어지고
찢어지다가 혼자 주저앉는
나는 그래도 축축한 편인가 보다
바람만 불어도 눈앞 보얗게 젖어
울음 참아 꽈리처럼 목젖이 부어
버스럭거리든지
가라앉든지
나는 아무래도 변덕스러운가 보다
바람만 불어도 이렇게 무너지는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날마다 무슨 바람이든 불지 않는 날이 없고
무슨 핑계로든 후회 없는 날이 없다
◇이향아=『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낭송하기 딱 좋은 리듬을 가진 글을 읽어본다. 바람의 입장에서, 바람을 맞는 입장에서 마주보며 서로를 묘사한 이 글은 바람의 여러 행태를 보여준다. 알고 있는 모든 특징을 정리한 바람의 정의에 독자로 하여금 한마디 보태고 싶은 관조적(觀照的)인 글이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