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풍경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그리움…하누리커뮤니센터, 하종국 개인전
절제된 풍경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그리움…하누리커뮤니센터, 하종국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1.04.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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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자 부모이자 친구인 우포늪
상처입은 현대인 안식처로 설정
단색물감을 농담만 조절해 사용
간결한 선·절제된 원근법 특징
하종국 작
하종국 작.
 
하종국개인전
 
작가 하종국(사진)이 눈을 감으면 늘 떠오는 장면이 있다. 드넓은 습지에 미풍이 지나가고, 산책로 아름드리나무에는 햇살이 반짝이는 아련한 기억 속 우포늪이다. 작가는 어린시절 우포늪의 너른 품에서 웃고 웃으며 성장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대상인 우포늪이 그에게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식처이자 고향의 풍경이다.

우포늪을 화면에 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우포늪을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과 고향 떠난 이후 가슴에 맴돌던 그리움의 무게가 우포늪 풍경이라는 서정으로 표현됐다. “어린 시절 우포늪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때의 우포늪에 대한 기억을 경쟁사회에 내몰려 상처입은 현대인의 안식처로 그려내고 싶었다.”

어린시절 우포늪은 물안개가 시나브로 피어올랐다. 하늘은 왕잠자리의 비행터였으며, 물속은 물방개의 놀이터였다. 어린 하종국의 눈에도 우포늪 풍경은 정겨움 자체였다. 하지만 그도 이제 중년. 인생의 거친 파도를 건너온 중년의 그가 어린시절 눈에 담았던 순수한 우포늪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역시 욕망을 내려놓고 어린시절 순수로 되돌아가야 했다.

순수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방편은 ‘절제’였다. 화면구성과 색채운용, 원근법에서 ‘절제’가 가해졌다. 우포늪과 우포늪을 둘러싼 야트막한 산들을 실루엣과 면으로만 간결하게 묘사하고, 나무나 물고기 등의 우포늪이나 주변 산이 품은 생명들은 과감하게 배제했다.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순수만큼 감동을 주는 지점도 없겠다 싶어 과감하게 절제했어요.”

미니멀하게 표현된 그의 우포늪 풍경은 아련하고 정겹다. 현실풍경이 아닌 꿈속 풍경같다. 그 아련함이 그리움을 더욱 짙게 한다. 꿈결 같은 표현법은 파스텔톤과 단색의 효과다. 단색 유화 물감을 흰색물감으로 농담조절을 가해 호수와 산과 나무를 단색계열 표현한다. 이는 단촐함과 통일감으로 연결된다. 과감하게 포기한 원근법도 아련한 정서를 부추긴다. “소설이 아닌 시와 같은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내는 최적의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린 우포늪은 우포늪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면 여느 시골의 호수 풍경을 닮아있다. 우포늪을 특별하지 않은 흔한 호수 풍경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태도가 스며든 결과다. 우포늪을 만인의 고향 풍경으로 일반화하려 한 것. 감상자들은 그의 우포늪 풍경에서 잊고 있던 고향, 먼 길 떠난 부모, 자주 볼 수 없는 친지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리면 된다. 이는 우포늪이 만인의 향수와 그리움의 표상이 되는 지점이다. “우포늪 풍경을 보고 고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을 더러 본다. 우포늪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포늪 사진을 수없이 촬영하지만 사진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진 속 풍경은 재구성된다. 복잡한 형상들은 정리되고, 풍경에 없는 요소들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리움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 화면은 단출해야 한다. 풍경은 그리움을 위한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정서는 ‘그리움’. 그리움은 애잔하지만 그리운 대상에 대한 기억은 대개 따스하고 평화롭다. 정겹고 따스한 고향 풍경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의 평화로운 풍경일 것 같지만 작가가 선호하는 풍경은 비오거나, 흐리거나, 일출이나 일몰 직전의 우포늪이다. 우울하거나 외로운 감정들이 지배적인 날씨들이다.

어두운 날씨를 어떻게 따스하고 평화로운 정서를 담아낼 수 있을까 싶지만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흐린 날씨를 그리는데 외롭거나 우울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 음악을 즐겨듣는데, 이 또한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 위한 행위다. “내 마음이 편안해야 편안한 그림이 나온다. 내 그림의 일차적 수혜자는 바로 작가인 나 자신이다.” 우포늪을 소재로 그리움을 그리는 하종국 개인전은 30일까지 하누리커뮤니센터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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