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삼키는 자
꼬리를 삼키는 자
  • 승인 2021.04.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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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장

세상이 미친 듯 춤을 춘다. 언젠가부터 뉴스 보기가 싫어진다. 싸우는 이야기 아니면, 죽이는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족을 살인하고, 자신과 사귀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가족까지 살인하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길 가던 사람을 이유 없이 '묻지 마 살인'을 한다. 잡혀서 카메라 앞에 서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냥 살인을 하고 싶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을 살인하려 했다."라는 도저히 인간이 한 행동이라 믿을 수 없는 말들을 자랑스럽다는 듯 쏟아낸다.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간다. 요즘은 자극적인 범죄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는 듯, 마치 세상이 원래 그러했다는 듯 덤덤히 살아간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그 위에 서서 짓는 승자의 미소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진짜 아름다운 미소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통한 너와 내가 손잡고 함께 웃는 상생의 미소다.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게는 위로를~"이라는 말이 시상식에서만 사용하는 그런 식상한 멘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 삶에서도 선의의 경쟁이 있은 후, 패자에게는 위로를 보내고 승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다.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이란 말이 있다. 제로 섬(zero sum)은 게임이나 경제 이론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제로(0)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게임에서 승자가 얻은 득(得)은 패자의 실(失)과 동일하다. 즉, 누군가 하나를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하나를 잃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즉,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게임이다. 반드시 이기는 사람이 존재하고 이긴 사람만큼의 지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결국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야 하는 win-lose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로섬 게임은 파이(pie)한 판을 두고 "누가 더 먹는가?" 하는 게임으로도 비유되기도 한다. 파이 100조각을 100명의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어떤 힘센 한 사람이 99조각을 자기 혼자 먹고 99명이 1조각을 나눠 먹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한 사람은 배가 터져 죽고 99명은 배가 고파 죽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게임에서는 다 같이 이득을 볼 수도 다 같이 손실을 볼 수도 없다. 어느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봐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 살 갉아먹는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신기한 사진을 한 장 본 기억이 난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삼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연인즉 영국의 파충류 애호가가 자신이 키우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삼키고 있는 것을 보고 급하게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살렸다는 내용이었다. 말도 안 되지만 그 뱀은 진짜로 자신의 꼬리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 행동은 살아가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머리 입장에서 보면 먹는 것이니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꼬리를 먹고 자기의 몸통을 먹고 있는 것이니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꼬리를 삼키는 뱀의 사진을 보니 고대 그리스 신화에 우로보로스(그리스어: ουροβ?ρο?)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로보로스는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이다. 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옛사람들은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는 뜻으로도 사용을 하였다. 그러다가 후대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자기를 먹어 없애는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무(無)로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본인은 후자의 해석에 더 공감이 된다.

우리 인간은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 관계로 서로 얽혀있다. 그것은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타인이 웃는 것은 내가 웃는 것이 되고, 또한 타인이 우는 것은 결국에는 내가 우는 것이 된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생(相生)하는 삶이다. 상생이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남이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나도 살아나는 삶이 바로 상생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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