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윤여정과 유정 그리고 롬, 로마
[문화칼럼] 윤여정과 유정 그리고 롬, 로마
  • 승인 2021.04.2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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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미국 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외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이미 받았으니 다들 수상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오스카상을 받게 되니 본인 뿐 아니라 지켜보는 우리들의 감격도 윤여정 못지않다. 조영남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생긴 건 못생긴 게 장가는 잘 갔다네---" 장가 간 대상이 윤여정이다. 천하의 조영남이 스스로 장가 잘 갔다고 할 만큼 윤여정은 대단한 배우인가 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윤여정은 데뷔 때부터 똑 부러지는 캐릭터로 각인 되었다. 인생의 부침도 있었지만 긴 호흡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은 끝에 이런 영광을 받은 것은, 개인을 넘어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 하는 모든 사람의 기쁨이란 생각이다. 수상 소감 중 인상적인 것. 데뷔 때 감독 김기영에 대한 언급과 유럽인이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에 대한 조크였다.

유럽인이 자신을 "여영, 유정"등 이상하게 발음하곤 하는데 용서 해주겠다는 멘트로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유럽인은 우리들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모음을 음가 그대로 발음하는 체계와 거기에 더해 약간의 부주의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자음의 음가가 일부 다른 것에도 기인한다. 유럽도 나라마다 일부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모음 '아에이오우'는 그대로 발음하며 알파벳 'J'는 '이'로 발음하기도 한다. 따라서 윤여정의 성을 표기한 알파벳 Youn은 '요운'으로 발음 될 수 있다. 그리고 '여- Yuh'는 '유' '정-Jung'은 '융그'로 발음되기도 한다. 그러니 여정을 유정으로 발음했으면 오히려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전-Jun'을 윤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 씨가 윤 씨로 바뀌는 것이다.

발음과 관련된 나의 경험담. 이탈리아 유학시절 당시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던 누나가 우편환으로 나에게 약간의 돈을 보냈다. 자신의 이름 끝 자 '숙'을 Sook로 쓰는 누나는 나의 이름 끝 자를 Kuk로 표기하는 줄 모르고 Kook로 적어 보냈다. 우체국에서는 내 여권 이름의 철자와 다르니 당연히 인출을 거부했다. 이때 기지(?)를 발휘한 나는 창구직원에게 'Shampoo'를 적어주고 발음해 보라고 했다. '오'가 2개라도 '오'로 발음하는 그들은 당연히 '샴포'로 발음했고 나는 "틀렸다. 2개의 '오'는 '우'다 따라서 샴푸로 발음하는 게 맞다. 이것은 전 세계 공통이다. 따라서 Kook는 kuk와 같다"라는 나의 강변(?)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인출해 주었다.

뭔가 복잡한 듯 하지만 그야말로 문화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이다. 다만 유럽과 영어권 국가의 차이는 있다. 로마는 영어로 '롬'이라고 발음한다. 나폴리는 '네이플스' 베네치아는 '베니스'로 부른다. 우리에게 롬과 네이플스는 익숙하지 않지만 베니스는 훨씬 귀에 익고 자연스럽다. 이처럼 고유명사를 그 나라의 발음으로 하지 않고 자기나라 식으로 부르다 보니 어느 게 오리지널 발음인지 조차 헷갈리는 현상이 생겼다. 우리도 한 때 '등소평' '모택동'으로 발음, 표기했다. 아직도 베이징만큼이나 북경이 우리에겐 편하다. 최근에는 고유명사는 가능하면 원래대로 덩, 마오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발음이 힘들기 때문에 또는 편의상 간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자기 식 으로 명명해서 사용하는 관례가 고쳐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순도 그렇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키운 지휘자 '이반 피셔'는 '피셰르 이반'으로 불러야 맞는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 계인 헝가리의 어순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하루키 무라카미가 맞는지 헷갈린다. 일본이 낳은 명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도 세이지 오자와인지 아리송하다. 각국의 어순대로, 원래대로 표기하고 읽어주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과잉친절인지 아니면 우리를 자기들 잣대로 부르는 국가, 특히 미국·영국 중심 영어권 국가의 문화적 오만 때문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한글은 전 세계 모든 언어를 거의 오리지널 그대로 표기할 수 있는 언어다. 그렇지 못한 나라의 언어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음이 대단히 훌륭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발음, 표기체계가 완벽히 갖춰지지 못한 나라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래 그대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배우 윤여정은 영화 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 했다. 이제 오스카 수상자로서, 수상소감을 통해 우리에게 각국 문화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토록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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