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장애
  • 승인 2021.04.2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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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었다. 필자도 이 날 지역의 장애인 복지관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복지관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예전처럼 많은 회원과 많은 봉사자를 모시지 못하고 최소화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모처럼 신나게 노래 부르고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장애를 생각하면 대체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마이너스(-)적인 것이 많다. 즉, 장애를 설명하기를 "무언가 부족하다. 약하다. 결손 되어 있다. 기능이 상실되었다." 등의 마이너스적 표현과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은 불쌍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거나 또는 불쌍한 것이 절대 아니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고 그 불편함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만들 수 있듯,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바꿨으면 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마이너스(-)의 개념에서 플러스(+)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장애를 바라볼 때 이렇게 표현을 바꿔 보자. "일반적인 것에서 장애가 더해졌다. 장애가 발생되었다. 장애의 요인이 생겼다." 이렇게 관점이 전환되면 똑같은 상황인데도 우리의 시선이 확 바뀐다. 장애를 더 이상 불쌍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사실 일반적이다, 보통이라는 말도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무엇이 일반적이고 무엇이 보통이란 말일까, 마땅히 대체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사용함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고 있다.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인권 의식도 날로 성숙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인식은 잘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가령 장애 2급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있고 30세 무직의 신체 건강의 취업준비생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장애 2급의 사장님은 한 달 수익이 1,000만원이고 장애가 없는 30세 무직의 남자는 한 달 용돈이 20만원이다. 이 두 명의 사람이 새 차를 사러 갔다. 과연 누가 금전적 도움을 받게 될까? 맞다. 1,000만원을 버는 장애 2급의 사장님이다. 실제로 금전적으로 어렵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무직의 남성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저변에 깔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장애인은 불쌍하다'라는 생각이다. 휴대폰을 사러가도, 비행기를 타도, KTX를 타도 동일한 조건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다.
장애는 불쌍한 것도 아니고, 가난한 것도 아니고, 비참한 것도 아니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일상생활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그래서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 모델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장애를 사회적 모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접근의 불이익, 취업의 불이익,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의 불이익을 없애 주어야 한다. 그리고 비장애인으로 하여금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교육을 해야 하고 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을 배워야 한다. 장애인이 집을 나와 보행을 하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길을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그건 장애가 아니다.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학교를 함께 다닌다면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장애라는 것은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장애가 될 수도 있고 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논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다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100에서 80이 넘는 다수 사람이 비슷한 모습이면 그것은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벗어난 20의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상이나 신체적인 부분은 하나의 기준이 된다. 흑인이 사는 곳에서 백인은 이상한 사람이고 키가 작은 피그미족에게 평범한 키의 사람도 이상하게 큰 사람이 된다.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장애의 기준. 네모가 기준인 세상에선 동그라미가 장애가 되고 세모가 기준인 세상에선 네모가 장애가 되는 것과 같다.
장애, 불쌍하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그 불편함만 사라진다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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