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눈금이 봉긋하도록
택배로 보내온 40kg 쌀자루
첫사랑이 건넨 브로치 증표 같다
끝내 할 말 다 못한 여름이
저렇게 단단히 주둥이 묶인 걸까
묶인 자루 매듭 풀고서야
너의 첫 마음 하얀 상처였음을 본다
울어 대던 태풍의 서러움에도
상처 위를 어루만졌을 잠자리 날갯짓
불도장 찍힌 쌀자루는 천하대장군
택배로 보낸 너의 모습 또한
당당할 수 있을 만큼 늙었겠다
따끈따끈한 밥이 될 아련한 추억
솥 안에 물 부어 쪄내는 일로
매듭 풀기 전부터 벌써 촉촉하게
내 마음엔 윤기가 흐른다
◇김건희=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수상, 대구문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두근두근 캥거루’
<해설> 천하대장군처럼 꿋꿋하게 머리가 희끗하도록 농촌을 지키는 벗에게 바치는 사모곡(思慕曲)한 편. 벼리를 풀면서 귀하게 보내온 벗의 쌀자루는 곧 그 마음의 벼리를 푸는 것과 같다. 그 쌀로 지은 윤기 좋은 그 밥을 먹는 시간이 어찌 목 메이지 않으랴.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