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 ‘행복한 왕자’ 속의 제비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 ‘행복한 왕자’ 속의 제비
  • 승인 2021.04.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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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교육학박사
제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우리 시골 초가집을 찾아들어 집을 짓고 알을 깠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산야를 누비며 노래를 불렀을 것이고, 먹이를 찾고자 이리저리 하늘에 금을 그으며 날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된 셈인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농약의 여파인지 각박한 인심의 변화 때문인지 몹시 아쉽습니다.

그 동안 제비는 여러 이야기에도 등장하여 봄소식을 전해주고 착한 사람을 찾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까이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도 없고, 날렵한 그 모습을 볼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도시의 아이들은 책에서 그림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명작 소설 「행복한 왕자」에 왕자를 도와주는 제비가 나옵니다. 이 제비는 우리로 치면 따뜻한 남쪽 나라에 해당하는 이집트로 날아가야 하는데 겨울이 다 되도록 왕자의 동상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못하는 갈등이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남쪽 나라로 날아가던 제비 한 마리가 지친 몸을 잠시 추스르기 위해 광장에 세워진 왕자의 동상 발치께로 내려앉습니다. 그 때 물방울 하나가 제비의 머리 위에 툭 떨어집니다. 그 물방울은 왕자의 눈물방울이었습니다.

“왕자님 같은 분이 왜 눈물을 흘리세요?”

“나는 궁궐에 있을 때에는 눈물을 몰랐어. 이제 광장에 높이 서서 저 건너 마을을 살펴보니 힘들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때, 내 부탁을 좀 들어주련?”

이리하여 제비는 딱 하루만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이윽고 날이 밝자 제비는 왕자의 칼자루에 박힌 루비를 뽑아 병든 노파의 집에 갖다 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다른 보석을 떼어 가난한 재봉사에게 갖다 주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노파와 재봉사는 그 보석을 팔아서 약도 사고 양식도 샀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웃음을 찾았습니다.

제비가 남쪽 나라로 날아갈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왕자의 부탁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윽고 왕자는 자신의 눈에 박혀있는 사파이어를 뽑아 좌절하고 있는 청년 작가와 눈먼 성냥팔이 소녀에게 갖다 주라고 합니다.

“왕자님, 두 눈을 모두 없애면 앞으로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잖아요?”

“나는 못 보아도 괜찮아. 내 눈을 받은 청년과 소녀가 나 대신 많은 것을 볼 테니!”

제비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기어이 왕자의 말대로 청년과 소녀에게 사파이어를 갖다 줍니다. 두 사람은 새로운 눈을 얻었다며 매우 기뻐합니다.

왕자는 또 자신의 몸에 감겨져 있는 금박(金箔)을 뜯어 가난한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주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다 보니 왕자의 동상은 시커먼 뼈대만 남았습니다.

이윽고 왕자의 동상에서 값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었을 때에는 한겨울이 되어 제비는 남쪽나라로 날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밤이 찾아오자 추위를 이기지 못한 제비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왕자의 동상도 떨어져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찾아오너라.”

그것은 왕자 동상의 심장 부분에 들어있던 납덩이와 그 옆에서 숨을 거둔 제비였습니다.

‘죽을 날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백이면 백 사람 모두 ‘돈을 모으기보다는 남을 도우며 보람을 찾겠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이 제비는 결코 길을 잃은 제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부서져도 참된 행복을 찾은 왕자와 더불어 진정한 길을 찾은 제비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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