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貞觀政要)와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교훈
정관정요(貞觀政要)와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교훈
  • 승인 2021.05.0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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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 영남이공대학교 관광계열 교수·경영학 박사
4·7 재보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최근 언론과 정치권에서 때아닌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소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선거에 패한 여당은 물론이고 선거를 이긴 야당, 언론에서도 연일 희자되고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서도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 순자(荀子)의 성어가 유독 인용되는 것을 보면서 민심의 무서움을 재삼 실감하게 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는 통치자의 자세를 논한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실린 내용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傳曰 君者舟也(군자주야) 庶人者水也(서인자수야), 水則載舟(수즉재주) 水則覆舟(수즉복주), 此之謂也(차지위야). 뜻을 풀어보면 ‘전해지는 말에 “군주는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이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는 것은 이것을 뜻하는 말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경구를 ‘자경문(自警文·스스로 경계하는 글)’으로 삼아 중국사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이룬 인물이 있다. 그는 당 태종 이세민으로 역대 중국의 제왕 중 가장 위대한 군주로 칭송되며 그가 다스린 서기 626~649년 시기를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하여 중국 역사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당 태종 사후 약 50년 뒤 사관(史官) 오긍(吳兢)이 태종과 신하들의 정치토론을 문답집 형식으로 기술하여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편찬하였다.

동아시아 ‘최고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로 통하는 정관정요의 정관(貞觀)은 태종의 연호이며 정요(政要)는 정치의 요체를 의미한다. 정관정요는 중국 당(唐)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이세민의 정치철학의 기본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한 정치 시스템의 구축과 실천, 군주와 신하의 도리,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과 자기 절제, 인재 등용 등 국정 운영 전반에 걸친 쟁간(爭諫; 다투어 간함), 의론(議論; 토의하고 논쟁함), 책문(策問; 정치에 관한 계책), 주소(奏疏; 상소)를 분류하고 편찬하여, 창업보다는 수성의 무게를 둔 리더십의 바이블이라 불리운다. 태종 이세민은 중국 당나라의 실질적인 창건자이자 제2대 황제로 중국을 통일한 후 끊임없는 자기 성찰로 독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겸청(兼聽)’의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제위에 오르기까지 무력에 의존하며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자신의 형제들을 참살하고 피로써 권력을 쟁취하였지만, 집권 후에는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관용과 소통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정을 펼쳤다. 특히 진영을 초월한 인재 등용으로 자신이 제거한 친형의 최측근 참모였던 위징을 비롯한 충직한 신하들을 등용하여 격의 없는 정치토론을 통해 자신을 낮추어 절제하며, 실천하는 열린 정치를 통해 당나라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위징은 당 태종 제위기간 무려 300번의 간언을 올리고 태종이 행하는 일마다 이치와 도리를 따지는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황제의 사적인 영역까지 간섭하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나 태종은 현명한 신하들이 있어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며 그의 간언을 모두 수용하였다. 정관정요(貞觀政要) 政體(정체)편을 살펴보면 ‘태종이 신하들에게 군주가 궁궐 깊은 곳에 있어 천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니 그대들이 참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하였다. 위징이 답하여 항상 깊은 연못을 지나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일을 처리하면 국가의 운명은 오랜 시간 이어질 것입니다. 또한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君舟也 人水也 水能載舟 亦能覆舟). 폐하께서는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진정 폐하께서 알고 계신 것처럼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그해 겨울,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도‘君舟民水‘(군주민수)였다.

그로부터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4·7 재보궐 선거 이후, 다시 시중에 희자되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성어(成語)를 보면서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심은 오만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던 집권 여당을 단호하게 심판하였다. 소통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정권은 국민이 결코 용인 하지 않는다는 것을 투표로 보여 주었다. 시대를 역행하는 지도자가 존재할 수 없듯이 민의를 거스르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집권 여당은 재 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국정을 쇄신하는 대전환의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국민을 위한 성찰과 여야가 상생할 수 있는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당 태종과 정관정요는 무력으로 집권한 지도자가 패도정치가 아닌 왕도정치를 선택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으며,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의 요체는 오만과 독주가 아니라 화합과 소통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정관정요는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아니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과거를 아는 자는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예측할 수 있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철에만 영혼 없는 반성과 쇄신을 다짐하다가 곧장 망각하는 정치권의 습관성 건망증이 치유되지 않는 한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는 머지않아 다시 세상에 소환될 것은 자명하다.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철학자 순자와 7세기 당나라의 정치가 위징이 언급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오늘날에도 여전한 무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정치의 덕목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여야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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