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계 너머 궁극의 세계, 심오함 넘실대는 흑백으로 표현…한국미술평론가협 작가상 김길후
현상계 너머 궁극의 세계, 심오함 넘실대는 흑백으로 표현…한국미술평론가협 작가상 김길후
  • 황인옥
  • 승인 2021.05.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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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 형이상학
‘예술이란 이승에서 찰나의 순간
저쪽 세계 틈새를 보는 것’이라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 예술론 영향
작가의 소우주 창조에 평생 집중
김길후작Untitled
김길후 작‘Untitled’

예술은 인간의 유일한 창조활동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예술가는 자신의 소우주를 창조한다. 창조라는 측면에서 신과 예술가는 동일한 선상을 달린다. 하지만 두 존재의 능력은 그야말로 비교불가. 신이 전지전능함으로 우주 창조에 관장한다면, 예술가는 예술적 영감을 원천으로 소우주를 창조한다.

작가 김길후는 예술적 창조를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형이상학에 주목한다. 그는 플라톤과 사르트르, 들뢰즈 등의 걸출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두루 섭렵했고, 그런 그 와의 짧은 대화에는 방대한 철학자들이 거침없이 소환된다. 작업실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없었다면, 그가 미술 작가인지 철학자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의 입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통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김 작가의 작품 세계는 ‘사유가 확장된 깨달음의 세계이자, 그가 갈망하는 진리의 세계’다.

“현대미술이 철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작가의 단순 유희에 불과하다. 철학이 기반이 돼야 나의 주관이 객관과 일치하게 되고, 그런 상태일 때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있다.”

전업 작가 선언 이후 오롯이 자신만의 소우주를 창조하는데 평생을 바친 김길후. 그가 창조하려는 소우주는 ‘진리의 세계’다. “인간이나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리를 향한 갈망은 중학교 때 이미 그 실체를 드러냈다. 당시 그는 실존주의의 대표 사상가인 사르트르의 철학에 매료되었으며, 새벽 4시면 미명(未明)을 뚫고 산사(山寺)를 찾아 새벽예불을 올렸다. 비록 어렸지만 지성과 영성에 대한 갈증은 선지자(先知者) 못지않았다. 그는 이미 이 시기에 “예술이란 긴 인생의 이승에서 찰나의 순간에 저쪽 세계를 틈새로 보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예술정의에 매료됐고, 우주와 예술의 본질을 간파했다. “의미를 이해하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사르트르의 예술론을 읽으며 직관적인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근작 ‘무제’ 연작
어느날 ‘저쪽 세계’ 만난 듯해
검게 칠한 한지와 흑백 물감으로
극강의 고요·최상의 순수 구현
"동서양 융합 통해 새 회화 모색"

잊고 있던 사르트르의 예술에 대한 정의가 김 작가의 의식을 재차 건드린 것은 그로부터 45년 후인 2016년. 그해 어느 날 문득, 사르트르가 보았다는 ‘저쪽 세계의 찰나의 순간’을 그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그 세계가 일필의 집약된 기운으로 ‘무제(Untitled)’ 연작으로 탄생했다.

작품 ‘무제’ 연작은 ‘궁극의 세계’라는 철학적 깨달음에 대한 시각적 구현이다. 그러나 시각적 서술법은 여전히 현상계의 방식을 따랐다. 그가 현상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한 그 방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깨닫는 것이 어렵지 깨달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나?”

궁극의 세계는 극강의 고요, 최고의 순수로 점철된 본질의 세계다. “궁극의 초월성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할지”가 최대 관심사였고, 그가 내린 결론은 고도의 절제미였다. ‘절제미’는 형이상학과 현상계의 중간지대에서 찾은 묘수였다.

절제미는 재료와 형식적인 측면에서 동시에 구사됐다. ‘인간계를 초월한 비현실의 황홀한 세상’을 표현하는데 흰 종이와 흑백이라는 절제된 물성이 선택됐다. 흰 종이와 흑백에 대한 선호는 “흰색 종이와 검정 색으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재료 못지않게 형식에서도 절제미가 두드려졌다. 검정으로 칠한 종이 위에 휘몰아치는 흰색 선들의 찰나적 유영인 일필의 위력으로 소우주가 단숨에 위용을 갖춘다. “궁극의 세계는 심오한 흑과 백의 절제된 만남 속에서 그 깊이감을 들여놓을 수 있다. 특히 검은색은 블랙홀 같은 우주의 본질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

깊은 침묵으로 이끄는 흑색과 침묵을 가르는 몇 가닥의 선으로 표현된 그의 소우주는 ‘추상’에 가깝다. 그러나 작가는 고개를 저으며 ‘해체’라고 정정했다. “형상이 있는 현실세계와 달리 초월의 세계는 형상이 해체된 에너지의 세계다. 비록 해체되었지만 에너지 속에 형태를 머금고 있으니 추상이라 할 수 없다.”

작품 ‘무제’가 기대고 있는 철학적인 토대는 현상학이다. 현상학은 현상계의 일원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는 현자들이 남긴 철학적 유산에 작가 스스로의 사유와 깨달음이라는 경험을 더해 자신만의 진리를 구축해간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정진과 삼매(三昧)다. “정진하는 과정에서 객관과 주관이 일치하고, 그 순간 자신마저 사라지는 진리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에게 삼매는 초월적 세계에 이르는 통로다. 그 통로를 지나면 사르트르가 보았던 ‘저 너머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순간 사람들은 구름에 가려져 있던 산신령을 마주하게 된다.”

‘궁극의 세계, 본질의 세계’라는 거대 담론은 40년 사유의 결정체다. ‘진리’를 향한 그의 사유가 심화 단계로 접어든 것은 20여년 남짓 됐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내면은 태풍의 눈을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의 작업에 회의가 밀려든 것.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갈망에 마음은 한없이 조급해졌다. 운명의 절벽에 몸을 던지고 싶었고, 마침내 결단했다. 분신과도 같은 1만 6천여점의 작품이 불길 속에 내던졌다. 

“지금까지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었다. 당시 작품들의 존재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성공의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당시에 그 욕망들을 불태워야 했다.”

그림을 불태웠을 때 내심 자신만만함도 없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여전히 웅크렸지만, 희망의 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던 것. 그때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 ‘검은 눈물(Black Rears·2003년)’ 연작이다. “검은 바탕에 표현한 ‘검은 눈물’은 상처받은 내면의 포효였다.”

‘검은 눈물’에서 그가 담아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검은 눈물’ 화면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가 향하는 희망을 길에 기꺼이 동참했다. 공감(共感)을 넘은 감응(感應)이었다.

“평화로운 고도문명 속에서 참담함을 느끼는 인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되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진한 아픔이 배어 있는 ‘검은 눈물’ 연작에 4년을 매달리자, 이번에는 아픔 없는 순수가 그리웠다.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지만, 어린 시절 그는 행복했다. 특히 그가 행복하게 떠올린 기억은 중학교 때다. 꽃밭에 만발한 꽃들의 향연과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기억 속에서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비밀의 화원(Secret Garden·2005년)’ 연작의 탄생이었다. 그의 화원에는 백합이 만발했다.

순수의 시대를 기원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세상은 요원했다. 그는 여전히 아팠고, 창작에 대한 고통은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다. “유년의 화원에서 불러낸 백합은 순수했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의 유혹,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비밀의 화원’에는 그 상반된 감정이 대비되어 있다.”

2010년경에 또 한 번의 성장통이 찾아왔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 나의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확률도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무작정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시기에 ‘현자’와 ‘영웅’ 연작이 탄생했다. ‘검은 눈물’과 ‘비밀의 정원’에서 실존하는 작가 자신을 그렸다면, ‘현자’와 ‘영웅’ 연작에서는 깨달은 자인 ‘현자’를 그렸다. “현자가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높은 경지라면, 영웅은 민중 속의 현자다. 현자를 영웅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였다.”

중국 활동은 김길후 이름 석자를 대내외에 알리는 분수령이 됐다. 2010년 북경아트사이드갤러리, 2014년 북경 화이트박스아트센터에서 왕충천(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감독, 북경중앙미술학원 교수) 기획전, 2016년 포항시립미술관, 2018년 한국문화관광부 후원 송좡당대문헌미술관 등 국내외 전시에 초대받으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작품 ‘무제’ 연작은 그로부터 6년 후에 찾아온 변화였다. 2016년 이탈리아 전시를 계기로 “동서양의 융합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시작했다. ‘무제’ 연작은 현재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작품이다.

그의 소우주는 철학적인 사유 속에서 한 계단씩 성장했다. 창작의 산고에 몸서리치는 작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사유는 희망의 세계와 교통하는 단계로 확장해갔고, 이후에는 신과 인간의 중간 존재인 현자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무제’ 연작에서 궁극의 세계인 형이상학의 세계로 발돋움했다.

가파른 내적 성장과 달리 표현 방식은 의외로 단촐했다. 종이와 검정과 흰색이라는 3요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여기에는 동서양의 융합으로 그만의 소우주와 새로운 회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했다. “나의 작품세계는 동양의 일필휘지가 향하는 재현을 넘어 서양의 표현주의까지 아우른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명징하다.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고, 그것을 통해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에게 경이로움은 예술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그가 예술가로서 느끼는 무거운 책임의식이다. “모나리자나 피라미드는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 궁극의 아름다움이어야 시대를 불문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감동을 만들어가고 싶다.”

오직 한길, 미술을 매개로 진리를 찾아가는 그의 여정이 큰 결실을 맺었다. 2021년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의 주인공이 됐다. 최형순 위원장은 “김길후의 강력함은 거침없는 필선의 속도에서 나온다. 그의 세계는 지구에 한정된 시각과 인간사의 인식만으로는 갈 수 없는 세계”라고 평했다. 그의 소우주에 세상이 답을 한 것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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