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훈展’,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순백 달항아리
‘양성훈展’,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순백 달항아리
  • 황인옥
  • 승인 2021.05.05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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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까지 동원화랑
조선시대 제작된 소장작품
2차원 평면 회화로 담아내
비움 철학에 시간성 덧입혀
작가의 소박한 감성 ‘오롯이’
기교 걷어낸 절제미 돋보여
적절한 여백으로 균형 잡아
양성훈 작
양성훈 作.

낮은 찬란, 밤은 고요다. 작가 양성훈은 낮의 찬란보다 밤의 고요에 이끌린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빼닮은 입체 달항아리를 2차원 평면 회화로 재해석하며 밤의 지극한 고요를 눈앞에 펼쳐낸다. 보름달을 닮은 우윳빛 유백색과 무심한 듯 빚은 부정형 원의 둥근 백자 달항아리가 그의 평면에서 은은하게 반짝인다. 꾸밈없는 소박한 작가와 그가 그린 달항아리가 기질적으로 닮아있다. “선조들이 달항아리에 담았던 소박한 감성을 회화로 표현합니다.”

그림의 대상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달항아리를 원칙으로 한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도예작가들의 달항아리가 아닌, 조선 시대 백자 달항아리를 고집하며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시간성’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연결성 또는 역사성을 조선 백가 달항아리에서 포착하려 한다.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에서 인간의 삶이 겹쳐졌어요.”

작가의 주제의식인 시간의 흔적을 켜켜이 머금은 달항아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자달항아리를 소장하고 있는 장소부터 수소문한다. 공공박물관이나 개인 소장가 등 소장처를 찾으면 실물 촬영 허락을 구한다. 허락이 떨어지면 사진을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그린다. “촬영 허락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허락을 받아도 주어진 시간이 짧아 애를 먹습니다. 그래도 오래된 달항아리가 주는 맛을 포기할 수 없어요.”

양성훈의 백자 달항아리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무시로 넘나드는 열린 공간이다. 시간성에 대한 그의 탐구는 달항아리 이전 작업부터 진행됐다. 무채색 계열의 추상 공간을 구현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그 시간성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갔다.

백자 달항아리는 시간성을 토대로 한 정체성 찾기의 연장이다. 이른바 확장된 버전이다. “나의 관심사는 늘 ‘내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것이었어요. 백자 달항아리 또한 나의 정체성 찾기의 여정에서 만난 또 하나의 대상이었죠.”

추상에서 백자 달항아리로의 태세 전환은 완충기를 가지며 진행됐다. 추상과 백자 달항아리 사이의 과도기를 거쳤다. 추상화면 위에 꽃이나 도자기 등의 소품들을 공중에 떠 있는 형상으로 표현했다. 추상의 난해함을 누그러뜨리고 중첩된 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은유적인 표현방식이었다. “대학 다닐 때 정물화 소품으로 쓰려고 고미술거리를 다니며 그릇이나 토기를 사 모았어요. 어느 날 아무것도 없는 추상 화면에 무언가 그려넣고 싶어졌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그릇이나 토기였어요.”

배경이었던 추상을 빼고 백자 달항아리로 전환한 것은 2011년.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은 실물 사진과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병행한다. 실물을 촬영한 사진을 사용하든, 각종 매체에서 찾아낸 이미지를 사용하든 시간의 흔적이라는 공통분모는 변함이 없다. 지금은 달항아리와 함께 고서(古書)나 다완 등의 고미술품을 병행한다. “나의 주제의식은 오직 시간으로 숙성된 달항아리의 고고학 품성에 경의를 표하는데 있습니다.”

무기교의 기교만큼 절정의 경지가 있을까? 백자 달항아리는 무기교의 기교를 대표하는 주자다. 섬세함과 화려함으로 중무장한 일본과 중국의 달항아리와 달리 조선의 달항아리는 색을 빼고 기교를 걷어냈다. 미완과 비움의 미학인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이자, 한국인의 미적 감수성의 극치였다.

양성훈은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품고있는 비움의 철학 위에 자신의 주제의식인 시간성을 추가한다. “존재들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그의 곰삭은 질문들이 백자 달항아리 위에 켜켜이 아로새겨지는 것. “제가 생각하는 극치의 아름다움은 시간성에 있고, 저는 그 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달항아리를 그리던 초기에는 사실적인 달항아리에 매달렸다. 그러나 이내 몽환의 달항아리로 돌아섰다. 시간이 중첩된 비현실의 세계에 현실의 달항아리는 뉘앙스가 맞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시간이 중첩된 공간은 오묘한 세계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첫 눈에 반하는 것은 화려함이다. 그러나 오래토록 여운으로 남는 것은 기교를 걷어낸 절제미다. 작가는 달항아리에 욕망을 하나씩 걷어낸다. 그리고는 마침내 민낯으로 그려낸 달항아리를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다. 내려놓고 비워낸 그의 겸손한 달항아리 앞에 사람들은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연다. “치장을 걷어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 받는 것, 그것이 제가 달항아리에서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그의 화면은 주연과 조연의 밀고당김으로 완성된다. 주연은 달항아리이며, 조연은 여백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연과 조연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두지 않는다. 조연도 주연에 버금가는 무게감을 부여한다. 화면에서 배경과 달항아리의 관계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는 것은 작가의 이러한 철학의 결과다. 유백색 달항아리와 여백이 동일한 감성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그 여백은 방해물로 전락한다. 주연과 조연의 하모니가 한 치의 오차없이 균형점에 이를 때 그가 바라마지않는 품격의 달항아리가 탄생한다. “여백이나 달항아리가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점을 찾아가죠.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지점에서 품격이 나오는 것이죠.”

고고한 자태의 달항아리에서 작가의 처연한 노동의 낌새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난한 작가의 노동이 스며있다. 그에게 노동은 작가 자신과 달항아리를 이어주는 매개다. “노동은 곧 저 자신입니다. 저의 숨과 기운이 노동을 통해 달항아리에 전달됩니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달항아리들은 그야말로 은은한 백색이다. 달항아리들마다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고 했다. 색과 형태,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 동일한 노동 같지만 노동의 결이 모두 다르고, 각기 다른 노동에서 각양각색의 달항아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내면에서 재해석된 달항아리들”이라고 했다. “같은 이미지를 보고 그려도 결과는 다 다르게 나와요. 저의 노동이 시시각각 변하고 그때마다 저의 감정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달항아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전시는 동원화랑에서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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