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선진국(2)
눈 떠보니 선진국(2)
  • 승인 2021.05.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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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사회부장
지난 글에서 ‘눈떠보니 선진국’이라고 했는데 이제 진짜로 선진국이 되기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이어가 보자. 클린턴 자서전은 천 페이지가 넘는데 하권은 전체가 다 숫자라고 한다. 자신의 임기동안 새로운 일자리 천만개가 생겼고 천만명의 최저임금은 얼마가 올랐고 등등.

페이스북은 업무지시가 없다고 한다. 직원들은 10억명의 등록 회원 중 만분의 1을 상대로 자신이 생각한 것을 테스트해 본다. 무엇을 할지 결재 올릴 필요도 없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번 적용해 보고 결과 리포트도 안한다. 통계상 유의미한 상승이 있으면 숫자 늘려 더 해본다. 효과가 보이면 대상자 더 늘려서 해본다. 페이스북 전체로는 1주일에 만개 정도의 시도가 있는 것이고 99%에서 효과가 없어도 1%만 성공하면 된다. 1주일에 100개가 성공한다면 4주면 400개, 1년에 4천 800개의 페이스북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윗사람이 이거 좋겠다하면 기획서 만들어 파워포인트 정리에 석달이 걸린다. 작업에 돈이 들고, 신통치않아도 지시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괜찮은 걸로 포장되기도 한다. 페이스북의 평가시스템은 숫자 기반인 것이 우리와 다르다.

공공데이터 공개가 얼마나 유용한지 사례가 있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란 시 정부가 마스크 공급 상황을 공개 한 후 3일만에 ‘공공마스크 앱’ 수십개가 나왔다. 어디가면 마스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돼 1주일도 안돼 마스크대란이 사라졌다. 정부가 이런 앱을 만든다면 입찰해서, 견적받아서, 보고절차 거치고 업체선정 최종 결과는 두달있다가 나올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단일 경제주체는 정부로 한해 558조의 예산을 쓴다. 데이터를 잘 활용한 작은 혁신으로 1% 효율만 높여도 5조 5천800억원을 아낄 수 있다. 한해 전체 수출액수보다 더 큰 이득이 있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우리나라 정부에서 데이터 공개는 많이 하는데 PDF, 아래아 한글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기계가 읽을 수 없거나 머신 리더블 파일로 변환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데이터법에는 누구나 접근가능한 로우데이터로, 머신 리더블 파일로 제공하도록 못을 박고 있다. 정부가 공개하는 데이터는 ‘기계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Machine readable)는 원칙을 법으로 구현한 것이다. 연방정부가 쓴 돈은 반드시 이런 모델로 제공하므로 수십년치 예산을 동네 아저씨가 쉽게 컴퓨터로 돌려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국무총리 산하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가 정부와 지자체가 정보를 공개할 때 전세계 개방문서표준 ODF로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시나 중앙부처의 국장급은 상당수 행정학이나 영어 등의 암기시험을 치른 고시출신이다. 미국, 영국 등의 나라에는 각 기관에 CIO(최고정보책임자)와 CDO(최고데이터책임자)가 있다. 만약 우리도 정부내에 소프트웨어와 IT에 대한 이해가 깊은 CIO와 CDO들이 있어서 각 부처의 데이터 처리를 기술적으로 잘 맡아주었더라면 기획재정부가 한해 예산을 PDF에 담아 발표하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그마한 회사들도 다 CTO, CIO를 갖고 있는데 정작 한해 예산 558조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CIO 한명이 없다는 건 터무니 없는 일이다.

누구든 수십년치 예산을 넣고 시계열 분석을 해볼 수도 있고,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다양한 제안들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예산의 집행 효과를 검증해볼 수 있어 해마다 우리나라 정부예산은 점점 더 새는 돈이 없어질 것이다. 3년전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에 갔을 때 싱가폴은 젊은 과학 전문가를 각 부처 장관으로 임명해 신기술을 도입하고 정부를 혁신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도 일찌감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만들었고 인터넷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한다고 하는데 예산 낭비를 막고 민간이 잘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혁신에는 인색한 것 같다. 선진국이 눈앞에 있는데 이런 사례들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답답하다. 민간 전문가는 숫자를 갖고 인터넷에서 놀고 있는데 관료들은 숫자와 담을 쌓고 수십년 넘게 해오던 백서 책자 인쇄를 위한 기안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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