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큰 가르침
선생님의 큰 가르침
  • 김상만
  • 승인 2021.05.13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승의날 기고]
한학중-영진전문대교수
한학중
영진전문대학교 글로벌외국어전공 교수
내가 자란 경주의 시골 고향에는 중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정부의 첫 평준화 정책에 따라 일률적으로 그 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당시 이 학교는 학습 환경이 엉망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있었다면 우리와 함께 새로 부임하신 우리 선생님의 열정이었다. 실험기구가 없자 빌려 오셨고, 책이 없자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와 읽히셨다. 전공은 과학이시나 지도는 전영역이셨다.

선생님의 열정 덕분에 시골학교를 다닌 우리도 백일장, 웅변, 과학 등 경진대회에서 많은 상을 탈 수 있었다. 시골 학교였지만 공부는 시내의 여느 명문학교에 뒤지지 않았으니, 그것은 오직 우리 선생님의 존재에 힘입었다. 우리는 그렇게 중학교를 마치고 제각기 제 갈 길로 갔다.

내가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은 고향 이웃의 현 대학에 선생으로 부임하고 나서이다. 타지에서 지냈던 터라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10여 년 전 친구들이 해마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과 함께 중학교 설립자이셨던 교장선생님의 산소를 찾아 참배를 드린다고 하였다.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나도 동참 하였고, 반백이 넘어 마침내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도 그 사이 사연이 많으셨다. 교육민주화를 위하다 옥고까지 치르셨고, 명예 회복 후에는 또 타지에서 교직생활을 하셔야 했다. 그리고 퇴직 후에는 고향 경주에서 야학봉사와 향토문화 지킴이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중학 시절, 선생님은 수업을 참 재미있게 하셨다. 나중에 노인대학에 다니시던 어머니의 입에서도 오직 선생님의 수업시간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로 선생님을 맞이하였다고 하셨다.

대학의 선생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 선생님의 수업이 듣고 싶었다. 이에 나의 학생들이 경주로 현장학습을 가게 되자 나는 바로 선생님께 문화해설을 부탁드렸다. 덕분에 나는 선생이 되어 또 선생님의 구수하고 현장감 있는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구구절절 강의의 비결을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한둘이랴마는, 그 중에서도 몇년전 고향이름을 내걸고 거행한 내남가암문화예술제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 행사는 중학교가 있던 고향을 연고로 문학, 서예, 공예, 음악 등 각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출향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른 바 종합문화예술전시 행사였는데, 나는 학술과 관련된다고 하여 처음부터 선생님과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막상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겁이 났었다. 출향인사들은 물론 경주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초유의 행사였기에, 잘못하면 세상에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일에 대한 추진력은 거침이 없었고, 덕분에 긴 준비 끝에 마침내 행사의 막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관람 인사들의 찬사는 우리로 하여금 고향의 보잘 것 없던 시골 학교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전대미문의 예술축제를 시골학교 코흘리개 아이들이 커서 펼친 것이다.

나는 나중에야 그 행사를 기획하신 선생님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것은 옛날 짧고 어린 중학시절 우리들에게 못다 가르치신 세상을 감동시키는 요체를 일깨워주시려고 우리를 채근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아울러 스승과 제자라는 인연으로 다시 고향과 모교와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하는 일을 함께 하는 재미를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시려는 큰 배려이었음을.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이런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내가, 우리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무한한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선생님께 제대로 감사인사조차 한번 드리지 못하였으니 그 빚이 얼마일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유독 당신의 육신보다 공동체의 삶을 더 중히 여기셨다. 만년이 되어서도 옥체를 돌보지 않고 봉사와 헌신으로 일관하셨던 바람에 큰 수술을 몇 번이나 받으셨다. 이제 하루 빨리 쾌차하시어 또 다시 당신의 그 신명으로 남은 가르침을 마저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