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은 원래 식사도구가 아니란걸 아시나요
젓가락은 원래 식사도구가 아니란걸 아시나요
  • 김종현
  • 승인 2021.05.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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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16) 제전과 종묘의 묘산죽(廟算竹) 젓가락
BC 6000년경 요리도구로 개발
불에 달군 뜨거운 돌 집거나
식재료 집어넣고 휘젓는 용도
춘추전국시대 제전의식 발달
각종 종묘제사에 자주 사용
섬세한 세공작업에도 쓰여
국왕-궁녀가 정사를 나눌때
손으로 만지는 불경스럼 없애고자
왕의 대물 은젓가락으로 다루기도
묘산죽젓가락
동양에서는 의사결정을 할때 젓가락을 산죽(算竹)으로 사용했다. 그림 이대영

우리말 ‘말씹다’는 표준국어사전에선 “i) 같은 음절이나 단어를 불필요하게 되풀이하다. 혹은 ii) 발음이 분명하지 아니하게 말하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네 말을 씹느냐? 먹느냐?”라는 제3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자(孔子)가 저술했다는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 BC 556~ BC 451)이 해석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도 “말을 많이 씹어 먹었구나, 그래서 그렇게까지 살쪘구나(食言多矣,能無肥乎)!”라는 비아냥거리는 표현이 나온다. 서경(書經)에서도 “당신이 믿지 못하겠지만 짐(나)은 말을 씹지 않는다. 당신들이 따르지 않으면, 난 여러분들의 가족을 도륙내겠다.”는 엄명까지 기록되어 있다.

2003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촬영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선 형사 박두만(송강호 역)이 살인용의자 박형규(박해일 역)에게 “밥은 먹고 다니느냐?”라고 툭 던진 말이 명대사로 회자되었다. 그런데 해외상영 영어자막엔 “넌 아침에 일찍 일어났느냐(Did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로 번역되어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사람 죽이고도 밥이 넘어 가느냐?”라는 뜻이다. 지난 2018년 10월 15일 판문점에서 남북한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어 북측 수석대표로 리선권(李善權)이 참석했고,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찾았던 남한 기업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고 핀잔을 줬다는 일화도 있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중 갈등의 심화양상을 마치 ‘점심 내기 게임(Lunch Betting Game)’처럼 보고, 2017년 4월 5일자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의 점심을 먹는 걸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How Trump can stop China from eating our lunch)?”라는 보도를 했다. 2021년 2월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연설이 있었다. 영국 BBC는 “중국이 미국의 기반시설로 점심을 먹어치우는 걸 바이든이 경고(Biden warns China will ‘eat our lunch’ on infrastructure)”라는 내용으로 송고했다.

◇젓가락은 원래 요리도구

조선시대 2대 개혁군주는 세종(世宗)과 정조(正祖)를 꼽는다. 그 가운데 세종은 육식을 가장 좋아했고, 민생탐방과 수렵(사냥)대회에 가장 많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민심을 읽기 위한 ‘밥상민심(飯床民心)’ 탐지에 열중했다. 세종의 밥상민심 탐지비결은 i) 가장 먼저 밥상에 올라오는 식재료를 살펴서 과거와 빈도수를 비교하고, 최근에 올라오지 않는 것을 눈여겨봤다. 특산물을 상납하는 곳의 민란과, 토착세력의 토색질 등을, 그리고 탐관오리의 모리(謀利) 등을 살폈다. ii) 밥상에 올라온 식재료의 튼실함을 기준으로 농사철 경작과 추수가 제대로 되었는지, 기후 및 수자원(농업용수) 등으로 가뭄이 없었는지, 관리가 부역 등으로 괴롭혀 제때 농사를 지었는지 등을 간파했다. iii) 밥상음식의 조화를 종합해 상소문이나 관리의 보고와 상이한 점, 이제까지 국내산이 아닌데 밥상에 올라온 것을 보고, 밥상을 올리는 사람들의 언행과 뒷 담화 등을 눈여겨봤다. 밥상 하나로 민심은 물론 세상축소판으로 세태를 읽었다.

중국 은(殷)나라(BC 1600~BC 1046)때 간쑤성(Gansusheng, 甘肅省)에서 젓가락으로 사용했던 동물 뼈 막대기가 발굴되었다. 중국고전 ‘한비자(韓非子)’에선 ‘사소한 작은 단서로도 미래에 전개될 사건을 간파할 수 있다(見小曰明)’는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象箸玉盃)’이란 고사가 있다. 내용은 은나라 주왕(紂王)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게 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숙부 기자(箕子)가 걱정을 했다. 상아 젓가락을 만들게 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상아 젓가락의 품격에 어울리는(모양새 갖춘) 음식, 반찬, 의복(虎皮), 술, 술잔(玉杯), 구중궁궐, 처첩(愛妾) 등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지면 결국은 망국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은나라는 결국 기자의 예상대로 망국과정을 거쳐 끝나고 말았다. 오늘날 카오스이론(chaos theory)으로 설명한다면, 상아젓가락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of ivory chopsticks)다.

후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책사였던 장자방(張良, BC 262~BC 186)은 ‘병영장막에서 전략을 세웠는데 천리 밖의 전쟁에 이기는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는 고사가 있고 이는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史記, 漢高祖本紀) 젓가락전략(籌策)편에 적혀 있다. 즉 BC 204년 항우(項羽)의 육국후예책봉계략에 대해 역이기(BC 268~BC 204)의 설명에 넋이 빠져 있었던 유방(劉邦)의 병영막사에 장량이 찾아들었다. 마침 식사 중이던 유방 앞에서 앉자마자 먹고 있던 젓가락을 빌려서 8개로 토막을 내어 육국후예책봉계책이란 합종연횡(合縱聯橫)의 함정으로 그 부당함을 하나씩 설명했다.

“(유방) 할 수 없소”하면 “(장량) 바로 그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하고 눈앞에 젓가락 한 토막을 내놓았고, “(유방) 그렇게 할 것이지요.”라고 하면, “(장량) 그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라고 또 젓가락 한 토막을 눈앞에 늘어놓았다. 이렇게 8개의 젓가락을 나란히 다 늘어놓자, 유방은 “세상물정 모르는 유생 놈(역이기) 때문에 하마터면 천하대사를 망칠 뻔 했구나!”라고 격분을 이기지 못해 먹던 밥상을 뒤엎었다.

젓가락(chopsticks)은 처음엔 식사도구가 아니라 요리도구였다. BC 6000년경에 오늘날처럼 솥, 냄비 혹은 포트와 같은 도구가 없었고, 나뭇잎 등으로 싼 식재료를 불에 단 돌 위에다가 얹어서 익혔다. 이때 뜨거운 돌을 집기 위해 젓가락을 사용했기에 기다란 막대기(fire tongs)였다. 솥과 같은 도구를 발명한 뒤에는 뜨거운 물속에다가 식재료를 집어놓고 휘젓는 등 요리도구(mesh skimmer)로 사용되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제전의식(祭典儀式)이 발달함에 따라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제물(공물)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옮겨 놓았다(food tongs).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설명도 음식요리와 제전에 사용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손가락보다 더 섬세한 세공작업을 할 때 작은 부품을 집어서 접합하는 젓가락(pinset)으로 황금왕관과 귀걸이 등을 제작할 수 있었다. 손으로 다뤄 불길하거나 불경스러움을 없애고자 젓가락을 사용하는 경우로는 국왕과 궁녀들이 정사를 나눌 때는 은젓가락을 사용하여 국왕의 대물을 속살에 집어넣었다(王與女合, 當以銀箸, 恭揷腎內)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젓가락은 식사도구보다도 이전에 종묘제사 혹은 각종 제전도구로 사용했다. 전쟁이나 각종 전략회의를 종묘나 사당에서 개최하면서 제전과 의사결정을 했다. 이때에 젓가락은 산죽(算竹)으로도 사용했다. 서양의 신탁(神託, oracle)처럼 동양에서는 묘산(廟算)이라는 전략구상을 했다. 이를 통한 사례가 을지문덕의 신책(神策)이었다. 젓가락 전략(神策)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612년 수나라 수륙양군 30만 대군이 침공해 오자,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청천강까지 후퇴하면서 적군을 한반도 내륙 깊숙이 유인해 ‘독안에 든 쥐(甕裏之鼠)’를 만들어 놓았다. 곧 바로 적장을 흥분시켜 정세 간파를 못하게 희롱하는 오언절구 시를 보냈다.

‘하늘의 뜻을 헤아린 전략과 땅의 이치를 꿰뚫은 신묘한 계략으로 연전연승하였네. 여기까지 만족하시고 그만 그쳐주시길 바라네(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라고 농(弄)을 걸었다.

수나라 군사는 희롱 당함에 격분한 나머지 감정에 말려들어 기획된 함정(堤破洪水)에 빠져 대패하고 말았다. 구사일생 패주(敗走)하면서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때를 알면 위험하지 않는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노자의 도덕경 구절을 몇 번이고 회상했지만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삶을 달통한 선비나 도인도 가장 만족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 음식을 먹을 때다. 또한 술을 마실 때는 멈추지 못해 늘 후회막급이 찾아온다. 그래서 주역(周易)에서 ‘멈출 곳(때)에 멈추고, 마음까지 분명하면 남으로부터 욕먹을 일도 없다(止于止, 內明無咎).”고 했다. 장자(莊子)는 ‘인간세(人間世)’에서 ‘길하고 상서스러운 것이라면 거기에서 그쳐라(吉祥止之).’라고 강조하고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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