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생긴 일
우체국에서 생긴 일
  • 승인 2021.05.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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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우체국 안이 왁자하다.
"뜨끈뜨끈 해예. 방금 뽑자마자 나온 거 바로 담아 와서 괜찮을끼라예. 우리 아들이 금방 뽑은 가래떡을 엄청 좋아해예."
"할머니 그러니까요. 할머니 말씀을 저희가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쉴까 봐 걱정이 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우편물이 많이 밀리는 때거든요. 혹여, 다음 주 월요일에나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거듭 강조하며 직원은 다시 할머니를 설득해 본다.
"아이스 팩이라도 넣어 다시 포장해서 오시면 안 될까요?"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게안아예. 매번 이래 보내도 게안턴데. 오늘따라 와 안 된다카는지 모르겠네예."
담당 직원은 안타깝다는 듯, 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다시 말을 건다.
"평일이 아니라 그래요. 평일이라면 하루 만에 들어가서 괜찮지만 주말이 끼인 금요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걱정이 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되면 쉰 떡을 자제분이 받을게 뻔한 일이라…."
할머니는 종이박스로 포장한 우편물을 품 안에 꽉 껴안은 채, 한여름 플라타너스에 매달린 매미처럼 창구에 배를 붙이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직원은 한 번 더 다짐하듯 물었다.
"그래도 그냥 보낼까요?"
실랑이는 끝나지 않았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고 있었다.

평일 점심시간이라 우체국 안은 주어진 휴식 시간에 빨리 업무를 마치고 각자의 일터로 복귀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 손에 한 장씩 번호표를 든 채 줄을 선 이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짜증 내 거나 다그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자신의 부모를 떠 올렸을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 역시 어떻게든 할머니를 달래 포장을 다시 한 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먹이고픈 할머니의 곡절한 마음이 아들에게 쉬지 않고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고 바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일이 떠오른다. '커피는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지인들이 '커피는 위(胃)를 자극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었는데, 조금 더 있으면 또 딴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네요'라고 입을 모았다. 지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여겨지던 때,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오랜 시간 치료 중이던 터였다. 커피는 어쩌면 당뇨에 치명적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는 의사나 가족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병실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다가 들키기 일쑤였다. 건강하실 때도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식사 전후로 라떼 한 잔 마시는 시간을 귀히 여겼다. 죽는 것보다 커피를 더는 마실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셨다. 그날도 그랬다. 늦은 저녁,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붕어빵을 사 들고 병원을 찾았는데 마침 아버지가 복도 한 귀퉁이에 숨어서 라떼 한 잔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한 모금 두 모금 애지중지 들고 계셨다.
"아! 아버지 너무 하신 것 아녜요."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마시던 커피를 뺏어 그대로 쓰레기통 속으로 거침없이 던져 넣고 말았다. 그것이 아버지가 이승에서 드신 마지막 라떼가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건강에 관한 정보야말로 최신 정보가 반드시 옳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최신(最新)이 반드시 최선(最善)은 아니었을 텐데 그땐, 그걸 몰랐었다.
할머니를 만류하다 그만두고 만다.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라떼처럼 할머니의 가래떡은 아들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가래떡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토요일에 바로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혹여 금요일이라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이틀이나 지난 월요일, 오전이 될지 오후가 될지도 모를 분명하지 않은 시간까지 더해 쉴지, 안 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쉴 확률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음에도…. 뜨끈뜨끈한 가래떡을 아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먹이고픈 마음으로 가득한 할머니만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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