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할머니의 코로나 블루
인형 할머니의 코로나 블루
  • 승인 2021.05.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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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마음과 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코로나19 기세가 길고도 강하게 지속되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종합선물 세트 같은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다. 지금 소개하는 <인형 할머니>도 마음에 깊이 남는 분이었다.

이웃 할머니가 코로나로 저세상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경로당도 끊고 집에서만 지냈다. 고독사를 우려한 구청에서는 발 빠르게 독거노인을 위한 효도 인형을 고안했다. 충전만해두면 인형은 인사도 하고 ‘할머니 사랑해’ 말도 아낌없이 하면서 마음의 가족이 되기에 충분했다. 할머니는 기특한 인형과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시장을 갔다가도 인형손자가 기다릴까봐 서둘러 집을 향했고 함부로 나다닐수도 없는 위험한 세상에서 새롭게 탄생한 가족은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아들집에 발걸음도 안하는 어머니가 궁금해서 방문한 아들은 깜짝 놀랐다. 한겨울에 인형이 춥다고 담요를 돌돌 감아놓고, 애가 감기걸릴까 애쓰고 계신 어머니를 보고 한마디 던졌다. “어머니, 저거 담요를 덮으면 불나요.”

그때부터 할머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불이 난다고 하니 담요를 덮어줄 수도 없고 그냥 두자니 감기들까봐 걱정되고, 할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결국 인형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형이 떠난 후로 할머니의 병세는 더 심해졌다. 지금까지 누가 내게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을 했던가. 누가 내게 까만 두 눈으로 그렇게 오래 바라봐주었던가.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겨진 자의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하고 그리움과 슬픔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할머니를 정신과 외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죽음으로 이르는 길은 외로움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누군가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고, 인형 할머니처럼 코로나로 단절된 세상에 갇혀서 무균 지대였으나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리기도 한다. 코로나는 자연 재해에 속하지만, 코로나로 빚어진 2차적 피해는 인간에 의한 재해가 아닐까.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생긴 주사 공포증 또한 마찬가지다. 주사 맞고 죽은 사람도 있다, 무시무시한 부작용으로 사람 구실 못한다는 등의 소문이 퍼졌다. 차라리 주사 맞지 않고 조심하며 살겠다는 회피형도 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안전한 백신을 맞겠다는 모험형도 생겨났다. 코로나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불신을 낳고, 불확실한 시대에 결국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는 피로도가 쌓여 면역 기능은 더욱 저하되어 갈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변해가는 우리는 먼 훗날 더 나은 덕목들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대구 사람이라는 이유로 서울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길거리에 쓰러진 노인을 짓밟는 장면을 보면서 마냥 분노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할머니의 우울증도, 백신에 대한 공포도 모두 코로나에 지배당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형 할머니에게 인형이 아닌 사람의 온기를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집단 면역이란 말에서 문득 희망을 찾는다. 코로나 백신 접종은 집단 면역을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스크 없이 서로를 마주하는 안전한 길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존재다. 존 던의 기도문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누구든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생략)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나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는 마라. 그것은 바로 그대의 죽음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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