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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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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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별빛이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처럼 흐른다고 착갈할 만큼 야경이 멋진 아파트에 이사 한 첫 날밤을 잊지 못한다. 이게 꿈인가 싶은 마음은 홍희뿐이 아니라 아들도 마찬가지엿다. 자기 방 창문에 손으로 '행복 OK'라는 글씨를 써 둘 정도였다.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꾸리고 싶었지만 턱없이 돈이 부족했다. 주택도 주방, 화장실, 거실이 있는 구조의 깨끗한 집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낡은 주택 2층집을 구했다. 부엌은 담장을 개조한 듯한 구조였다. 화장실은 창고에 수도와 변기를 설치 한 듯 했다. 수도를 틀 때 마다 '쎄에쎄 쎄에› 하는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꽤나 거슬리게 하는 소리는 부엌일을 하기 싫게 만들었다.

방 안 벽은 진한 갈색 나무벽이었다. 칙칙했다. 긁힌 흔적이 있었고, 나무에 묻어서 흡수되어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있었다. 보기 싫었다. 팥죽자국 같기도 했고, 핏자국 같기도 했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기고간 흔적 같았고, 왠지 행복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거실이라고 할수 있는 공간 맞은 벽은 원래 벽이 아니었다. 일층에서 올라오는 계단통로였다. 나무판자로 막아두어서 밤에 아랫집에서 내는 말소리, TV소리가 들렸다. 신혼의 행복따윈 없었다. 밤에 불을 끄면 바퀴벌레가 '사사삭 스스스' 기어다니는 집에서 사랑이 싹트기는 어려웠다.

2년간 돈을 모아서 전세 계약이 끝나고 이름만 아파트였지 그 전 집이랑 별반 다를 것은 없는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벽지가 새 것이었고, 바퀴벌레가 없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느낌은 비슷했다. 다시 2년후 1층 넓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구조는 괜찮았는데 낮도 밤처럼 어두웠다. 2년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게 되어 수성구로 이사했다. 좁은 아파트였고 답답했다. 문도 낡았고 씽크대도 오래되었다. 거실은 부엌과 겸용이었다.

신혼 초 가진 돈으로도 분양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아파트를 많이 짓기 때문에 나중에 빈 아파트가 늘어날 것이고 빈민가처럼 될 것이라며 아파트 분양받기를 거부했다. 수성구 전셋집에서 8년간 살면서 전세금도 높아졌고 매매가도 높아졌다. 8년이나 더 오래된 집이 처음에 이사왔을 때보다 1.5배 정도 집값이 올랐다. 뉴스에서 집값은 계속 상승된다고 했다. 남편도 더 늦으면 아파트를 못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대출을 해서라도 매입하자고 했다. 한편으로는 분양에 관심을 가져 알아보았다.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분양한다는 말을 듣고 청약을 하자고 했는데, 분양가가 비싸다며 나중에 대출을 못 같으면 어쩌나,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반대를 했다. 다리 건너 중구 분양가가 조금 더 낮아 분양을 받았고, 2년후 이사를 했다. 새 아파트로 내집 마련을 하여 이사를 하여 기쁨이 충만했다. 더 이상 욕심나지는 않았다. 이 정도도 충분했다. 16년이나 걸려서 산 집이었다. 물론 대출금은 남아있지만 시간이 약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집값이 상승했다. 상승폭은 수성구 분양받고자 했던 집과 중구 살고 있는 집이 달랐다. 수성구가 월등했다. 현재도 분양받자마자 2배로 뛴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값이 오르면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리 상승되는지 이해는 잘 되지 않는다.

쾌적한 공간에서 사는 꿈이 16년이 걸렸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매일 출근하여 번 돈으로 내 집 마련했기에 당당하고 뿌듯하다. 지금처럼 아파트값이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면 3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재테크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대부터 비트코인을 하고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현명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점심식사후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들이 주식이야기, 부동산 재테크이야기를 한다. 재테크를 모르고 16년만에 내 집 마련을 한 홍희는 이상하게 높이 뛰는 아파트 이야기로 점심시간을 뺏기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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