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事必歸政)
사필귀정(事必歸政)
  • 승인 2021.06.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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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7080년대 대학 축제 때 인기 있는 탈춤 공연 중 하나가 '고성오광대'이다. 낙동강 서편에서 행해지던 탈춤을 오광대라 하고, 경상남도 고성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탈놀이이므로 고성오광대라고 한다. 고성오광대는 조선 말기까지 고성지역에서 관속들이 놀던 가면극이며, 1910년대에 남촌파 한량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하였으며, 그 뒤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았다. 연희 7~8일 전에 고성 몰디 뒷산의 도독골 산기슭 잔디밭에서 연습하여 정월 대보름 저녁 장터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놀았으며, 인근에서 남녀노소가 모여들어 구경했다. 이러한 고성오광대는 종교적 의의는 없고 단지 오락 위주의 장터놀이로 놀아왔다고 한다.

고성오광대는 중춤, 문둥이, 오광대, 비비, 제밀주 등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이 각시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중의 타락상을 풍자하고, 오그라진 손으로 소고(小鼓)를 들고 벌벌 떨면서 문둥이의 흉내를 내는 장면, 양반이 말뚝이를 윽박지르면 말뚝이는 슬그머니 말을 돌려서 변명하고, 그것을 듣고 속아서 더욱 바보스럽게 망가지는 양반의 모습, 비비가 등장하여 양반에게 퍼붓는 욕설, 마지막 마당에서는 영감, 본처인 할미, 첩인 제밀주가 등장하여 처첩 갈등으로 인한 가족제도의 모순을 풍자하였다. 고성오광대는 1930년대 일제의 금지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연하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고성오광대 전수회관이 마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성오광대가 인기 있었던 것은 유신말기 언론이 통제된 권위주의 시대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으로 억눌린 민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탈출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풍자가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비판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면, 해학은 억압받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를 향한 시선을 동정적으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선조들의 일상생활이 녹아있는 마당극이나 판소리, 소설 등에서 자주 드러나며,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적 표현을 통해 기쁜 상황은 더욱 유쾌하게 만들고, 슬픈 상황은 웃음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직접 요리도 하고, 그 장면을 SNS에 올리는 등 재벌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과 친근한 이미지로 유명하다. 정 부회장은 지난 5월 26일 우럭과 가재요리를 하면서 "가재야 잘가라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글을 올렸다. 평범한 이 글이 논란이 된 것은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나자마자 그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대표가 대세몰이를 위해 팽목항을 방문하여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학생들에게 남긴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라는 글과 오버랩 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정 부회장의 글이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불매운동 운운하고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스타필드와 롯데몰 등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규제관련 법안을 재추진하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통법 개정의 핵심은 강제휴무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복합쇼핑몰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상태에서 한달에 두번 정도 휴업일로 정하고 영업시간도오전10~8시까지제한하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복합쇼핑몰 규제로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이 크게 살아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여론도 다수 있는 것으로 보아 견강부회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총수가 오너 리스크를 안고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치권을 조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IMF 외환위기 발발하기 2년 전인 1995년 당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고 곤혹을 치뤘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본래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모든 일은 반드시 정치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政)으로 재해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자신 있는 정부라면, 그리고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사회적인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풍자와 해학으로 카타르시스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치와 상관없는 유명 인사들의 일상적인 글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대통령에 대한 풍자나 해학을 사사건건 말꼬리 잡는 것은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승자독식의 정치권에도 풍자와 해학을 통해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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