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넷플릭스와 책 한권
[문화칼럼] 넷플릭스와 책 한권
  • 승인 2021.06.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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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오늘 밤에도 나는 고민한다. 읽고 싶은 또는 읽어야하는 책을 보다 잠들 것이냐 아니면 넷플릭스 영화를 볼까? 가벼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대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고야 만다. 책을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남는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끌림이 커서 TV를 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수많은 영화중 무얼 볼까 하며 고르는데 몇 십 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곧 졸음이 와 이내 침대로 든다. 그리곤 그냥 잠들면 안 될 것 같아 누운 채로 책을 읽다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불을 끈다. 결국 영화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책도 얼마 읽지 못한 채 잠에 들고 만다.

넷플릭스의 장점은 볼만한 영화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점에 함정이 숨어있다. 볼만한 게 많다보니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진득하니 보게 되지를 않는다. 보다 조금만 흥미를 잃게 되면 이내 다른 영화를 찾게 된다. 게다가 모처럼 잘 고른 영화라 하더라도 물 마시느라 잠깐 스톱, 화장실 가느라 멈춤 그리고 대개는 졸면서 본다. 이러니 영화를 집중력 있게 죽 끝까지 한숨에 보기가 어렵다. 끝까지 재미있게 본 영화라 하더라도 화면 크기, 사운드가 집에서는 제한이 있으니 감동이 적다.

혹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극장에서 007류의 영화를 보고 귀가하는 자신의 운전 스타일이 방금 본 영화의 주인공처럼 차를 몰고 있다는 걸. 나는 이와 유사한 경험이 많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출연한 영화 '와일드'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300km의 PCT트레일을 걷는 영화다. 도중 과다한 무게의 배낭과 조이는 신발 탓에 주인공의 발톱이 빠진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의 발톱이 빠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이만큼 몰입력이 강하다. 화면과 서로 교감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봐야 시간을 투자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발걸음이 잘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애용하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집에서 보는 영화는 남는 게 별로 없다. 줄거리만 남지 그 장면에서 표현하는 디테일한 언어는 다가오지 않는다. 종이책과 e-book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매일이다시피 집에서 영화를 보는 편이지만 보고나서도 멍하다. 반면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것이 만족감이 훨씬 크다. 나는 내가 보는 책은 거의 다 사서 본다. 빌려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소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기록해두었다 10권 정도씩 한꺼번에 사서 책꽂이에 두고 아주 만족스럽게 쳐다본다. 마치 새 물건을 아끼다 끄집어내 쓰는 것처럼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마음 가는 책을 골라 읽어나간다. 집에 있는 책을 읽는 순서도 나름 패턴이 있다. 외국 소설을 읽었으면 그 다음에는 국내작가의 작품을 고른다. 왜냐하면 번역된 책은 대부분 읽기가 편치 않다. 그리고 아주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 이를테면 읽다 밑줄을 많이 쳐야하는 책을 보았으면 그다음에는 줄거리가 흥미진진한 것을 고른다. 이런 패턴은 나름 리듬감이 있어 덜 지루하다.

최근 읽은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와 김영하의 '검은 꽃'이다. 순례자는 약 7년 쯤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았다. 두 번째 읽게 되면 첫 번째와는 그 감동이 다르다. "천국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일 속에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변화를 부르고, 인간은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을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길 '산티아고 순례 길'을 통해서 깨달았다. 다시 읽게 되면서 코엘료가 말하고자 한 것을 조금 더 발견할 수 있었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905년 멕시코로 떠난 1033명 한인들의 인생유전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소설 속의 사람들 운명에 때론 분노를, 때론 깊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어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책이다. 김영하의 이야기 솜씨 뿐 아니라 많은 취재가 따랐음을 쉬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 그 어떤 영화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휴일에 집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 후 햇살 드는 거실에서 책 읽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 일과 후 집에 돌아와 다리를 죽 펴고, 보다 만 책을 집어 들고 읽노라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에도 TV를 먼저 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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