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서성이는 오솔길에서
흰 머리카락 쓸어 넘길 수 있어 좋다
까칠함을 덜어낸 생애 성적표는
수가 아닌 우일지라도
천천히 머금을 차 한 잔의 여유가 있어 좋다
너무 많이 울어서 순해진 눈가
덧칠 없이 읽히는 눈빛들
거미줄에 걸린 아침이슬 같아 좋다
주름진 손등이어도
손주 자랑 훈훈하게 할 수 있는
너른 곳간 같은 지혜가 있어 좋다
흑백사진 속에서 꺼낸 미소
넉넉한 지금이어서 참 좋다
◇김건희=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수상,대구문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두근두근 캥거루’.
<해설> 이 시는“좋다”라는 시어가 연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감흥을 배가시키고 있다. 컬러사진이 아닌 흑백사진 속 미소를 끄집어낸 넉넉함이 있어 좋다는 화자의 독백이 아름답게 가슴을 울린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