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사유, 강렬한 원색으로…한국화 인식 깬 독자적 화풍
내적 사유, 강렬한 원색으로…한국화 인식 깬 독자적 화풍
  • 황인옥
  • 승인 2021.06.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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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오모크 임종두 ‘동행’展
여인 형상으로 빗댄 양성평등
사회적 부조리, 남성으로 표현
관조적 시선의 백미 ‘달리 달리’
구도자적 관념 ‘빨간색’에 녹여
화려한 색채로 이국적 美 발산
자연 재료 사용 전통미도 살려내
임종두 작 '달리 달리'
임종두 작 ‘달리 달리’.

전통 서예나 문인화는 고도의 정신 작용의 산물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평생 갈고 닦은 학문과 철학을 서예나 문인화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폭발하는 감성보다 이성적인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으며, 서예나 문인화를 품격의 예술로 인식했다. 정신성을 중시했던 그들에게 화려함은 하수, 먹빛의 단아함은 고매한 선비의 경지로 여겼다. 채색을 가미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먹색에 흡수되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선조들처럼 색채 감각이 뛰어났던 민족이 있었나” 싶다. 선조들이 일상 속에서 화려한 색을 거침없이 사용한 예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왕궁이나 사찰 단청의 화려함은 거침이 없었으며, 양반가 복식에도 빼어난 색채감각이 여실히 드러났다. 오방색도 모자라 저고리와 치마를 보색으로 대비시켰고, 아이들은 총천연 색동저고리를 입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임종두 작가는 한국화를 자신만의 미적 감수성으로 새롭게 해석하는데 작가적인 역량을 발휘해오고 있다. 특히 황(黃), 청(靑), 적(赤) 등 오방색 중에서도 화려한 색조들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가 조형언어로만 색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색 쓰는 것 자체를 즐긴다는 추론은 화면 곳곳에서 발견된다. 화면을 장악한 붉은 색 앞에서 머뭇거린 흔적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즐기지 않고서는 그토록 자유분방한 표현법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수묵에서 진채로 방향을 튼 것은 2000년대 초였다. 임 작가는 “수묵과 진채는 한국화의 양날개”라며 “지금은 한국화의 한 축을 이루는 진채에 집중하고 있다”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1980~90년대는 한국화가 대세였고, 또 한국인이니까 한국화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있어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미술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색을 쓰는데 거부감은 전혀 없다.”

그의 채색화는 색(色)과 면(面), 선(線)으로 구성된다. 색(色)이 관념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면, 면(面)으로 드러나는 형상은 관념을 설명하는 시각적인 토대가 된다. 형태의 테두리로 활용되는 선(色)은 형태를 완결 짓는 역할로 제한된다. 그는 “한국화에서 형태를 완결 짓는 역할로 선적인 요소들을 활용했다”며 “나의 선들은 그런 용도로 사용된다”며 선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화에서 두드러졌던 색에 대한 절제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6·25전쟁 전후의 경제적인 어려움, 권위적인 정권 하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등의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강화되었다. 색에 대한 붐이 다시 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천경자 작가 등이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색채로 색의 귀환을 알렸다.

“정신성을 중요시하던 수묵화의 특성과 채색에 사용되는 석채같은 재료들이 워낙 고가인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채색문화가 단절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분명히 채색문화가 존재했다.”

작가가 색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2000년대 초다. 여인의 형상으로 채색화가 구체화됐다. 첫 작품에서는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분위기를 담은 여인 형상으로 드러났다. 원피스를 입은 순수한 여인을 그렸지만 내면에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양성평등에 적극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의 은유적 표현에 해당됐다.

동시대가 노출한 사회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녹여내려는 태도는 일찍부터 발현됐다. 수묵화에 집중할 시기에도 작가는 먹색의 남자형상을 통해 암울하고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은유하고는 했다. 예컨대 소 한 마리를 키우는 가난한 농부나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고엽제에 노출된 퇴역 군인,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된 노인 등을 남자 형상으로 표현하며 사회적인 부조리를 언급했다.

“사회참여나 사회적인 발언까지는 아니어도 우리시대가 노출한 부조리한 현상들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거친 언어는 아니더라도 담담하게 그런 현상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여인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는 채색화 시리즈도 변화과정을 거쳐왔다. 양성평등 이후 꽃구름을 타고 푸른 하늘에 떠서 악기를 다루고 있는 비천상을 현대여인의 형상으로 재해석하며 ‘인간을 위무’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이후에는 머리 부분을 꽃으로 장식한 여인으로 대표되는 ‘숲’ 시리즈를 통해 자연파괴나 인간소외 등의 사회문제로 넘어왔다. 자연회복이나 인간성 회복에 대한 시대적인 열망을 여인의 몸과 자연의 결합이라는 조형언어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나무나 식물을 보면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나는 그런 자연들에서 존재의 근원을 발견한다. 도인같은 자연이 내게는 스승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인간에게서 사회로,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등으로 확장되다, 마침내 소우주와 대우주라는 존재의 근원으로까지 내달리고 있다. 여인을 소우주로 설정하고, 여인의 머리에 자연이라는 대우주를 구상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말하자면 “내 안에 우주 있다”고 말하는 인내천 사상이나 불교의 여래장 사상을 작가만의 조형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그의 우주론에는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큰 철학적 사유가 스며있기도 하지만,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나가려는 미시적인 차원의 열망도 담겨있다. 대우주인 자연에 속해있으면서도 독립된 소우주로서 자신의 가치 높여가려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내 안에서 해답을 찾는 것도 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러면서 우주적인 것을 끌어와서 나의 영혼을 살짝 더했다”고 했다.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인데 나는 예술가로서 나만의 캐릭터 하나를 남기고 싶다.”

강렬한 색채감과 역동적인 조형미 그리고 사유와 형상의 조화 등에서 서양화 못지않은 미의식을 보여주지만 그의 작품들은 분명 한국화를 시대적인 미감으로 재조정한 결과다.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내용과 자연적인 소재와 자연의 재료로 담백하게 표현했던 형식미 등에서 그렇다.

그런 그의 최근 2~3년 사이의 변화는 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우주에서 인간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 작품 ‘달리 달리’ 연작은 그 백미에 해당된다. ‘달리 달리’ 연작은 ‘달린다’는 표현 그대로, 여인이 힘차게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인의 형상을 완결 짓는 선을 순금으로 표현하며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 직설화법을 좀 더 사용한 측면이 있었다면 ‘달리 달리’ 연작에서는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더욱 짙어졌다. 무한경쟁 사회에 내몰린 현대인의 자화상에 대한 은유다. “‘달리 달리’는 작가로서 남과 다른 작품세계를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와 물질만능과 외모지상주의에 내몰려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멈춤 없는 욕망’에 대한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채색화에 집중하면서 무한한 채색의 세계에 매료되어 가고 있다는 임종두. 그의 모든 작품들이 내적 관념에 집중했듯, 그가 즐겨 쓰는 빨간색에도 작가의 구도자적인 사유가 진지하게 녹아있다. 예컨대, 옻닭을 먹었을 때 옻 알레르기 인해 붉은 발진이 생기는데 작가는 인간이 옻과 싸워 피어내는 붉은 알레르기야말로 아름다운 훈장이라는 독특한 시각을 견지하건, 태양이나 꽃의 정열, 자유나 투쟁 등의 열정, 고추장과 김치 그리고 동지팥죽 등에 담겨진 붉은 색에 대한 인간의 관념적인 접근 태도를 붉은색에 은유하는 식이다.

“변치않는 단심, 부끄러울 때 띠는 홍조, 아기들의 붉은 피부 등을 곱씹어 보면서 붉은 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색의 제왕, 최고의 색인 붉은 색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재료는 고가의 석채를, 캔버스 대신 장지를, 밑작업에는 아교를 사용한다. 하나같이 자연에 가까운 재료들이며, 고가다. 높은 밀도감으로 가공했지만 자연물이라는 특성상 강렬한 색을 내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작가는 수없이 많은 중첩으로 서양물감 못지않은 화려함을 이끌어낸다. 대신 자연과 가까운 재료이어서 한국화 특유의 맛은 고스란히 머금을 수 있었다.

고가의 재료와 반복된 작업과정으로 500~1,000년도 거뜬히 견디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이지만 그의 가장 큰 화두는 정신적인 사유에 있다. 그는 “현실과 이상의 중간 지점에서 곤지발을 짚고 있는 상태”가 현재 자신의 그림의 포지션이라고 인식한다. 완전한 이상세계도, 그렇다고 완전한 현실세계도 아닌 3차원과 4차원의 중간지대에 자신을 놓고, 경계에 서서 저 너머의 세계를 살짝 엿보며 그 세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결국 중간지대는 조화로움에 있다”며 “수목처럼 내면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작가로 살고 싶고, 그런 그림을 남기고 싶다”며 작가로서의 추구하는 방향성을 언급했다.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의미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제일 좋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에 도달해 가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화를 이룬 세계를 의미하는 갤러리 오모크의 임종두 개인전 ‘동행’전은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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