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속
벗어던진 옷들이 돌고 돌다가 기어나온 표정이 가관이다
와이셔츠 왼팔은 스커트 자락을 비틀어 잡고 있고
가디건 앞섶과 면바지 자크가 끼여 있다
브레지어 끈과 양말이 꼬여 파닥이며 아우성이다
스타킹은 온 세탁물들을 묶어 꽁꽁 동여매 있다
서로 엉키고 매달려 내팽개치지 못하고
끈질기게 집착하는 저 현상
참 예의가 없다
각자 경계 다툼이 저토록 완강해
엉키고 꼬이며
지지고 볶으며 살아도
보라! 저 놓치지 않는 결속의 힘
◇이필호=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삶과 문학 회원, 대구 작가회의 회원, 2017년 시집 <눈 속의 어린 눈>.
<해설> 정감 가는 시어들의 활착이 아름답다. 시인의 발상전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저 세탁기의 꼬임과 밀 부침이 얼마나 감명 깊은 시로 탄생하는지 독자들은 직감적으로 느낄 것이리라. 읽어 가슴을 뭉글거리게 하는 곱고 정겹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