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아트피아, 조각가 이시영展
수성아트피아, 조각가 이시영展
  • 황인옥
  • 승인 2021.06.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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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 튼 인간 ‘존재를 반추하라’ 하네
디지털 활용 인체 수천 개 해제
나무 재단 후 설계도 따라 조립
주목해야 할 ‘가부좌 튼 1m 좌상’
자작나무 노란빛에 흑연 채색
“검정계열로 명상 분위기 표현”
다시-이시영 작
이시영 작.

견고한 나뭇조각으로 만든 인체 조각이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조각가 이시영의 작품들이다. 휴식하며 명상하는 사람, 웅크리고 고뇌하는 사람, 성장을 위해 도약하는 사람 등 인체가 취한 포즈도 각양각색이다.

놀라운 것은 수백에서 수천 개의 나뭇조각을 레고처럼 조립해서 인체를 구현했다는 것.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하나의 덩어리에서 출발해 인체 덩어리로 완결되거나, 수많은 덩어리를 붙여서 하나의 인체 덩어리로 완결된 경우가 아님에도, 완벽한 3차원 입체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비결은 “설계도”에 있다.

“내 작업은 반복되는 모듈과는 다르다. 퍼즐의 형태로 제작된다. 수많은 수많은 퍼즐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하는데, 사전에 치밀한 설계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재료는 자작나무다. 포플러 목재도 사용해 보았지만, 약한 물성 때문에 형태가 일그러지기 일쑤여서 단단한 재질의 자작나무만 사용한다. 설계도에 따라 구현하는 작업 특성상 재료는 플라스틱부터 철제까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단, 재료에 대한 이해와 재료를 제어할 역량을 갖추었을 경우의 이야기다. 만약 역량 부족일 경우 재료의 한계는 불가피해진다. “자작나무로 지금의 인체를 구현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향후 재료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체는 조각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익숙한 대상이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조각 제작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이시영의 조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따른다. 디지털을 활용해 하나의 인체를 수백에서 수천 개의 나뭇조각으로 해체하고, 디지털상에서 먼저 시연을 해본다.

디지털 작업이 끝나면 아날로그 작업이 본격화된다. 나무 재단에서부터 시작해 조립으로 이어진 후, 조립이 끝나면 나무의 거친 부분을 밀고 다듬는 마감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고전적인 인체 조각은 완벽한 8등신의 황금비율을 자랑하며,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시영은 ‘시각 차원 너머’에 방점을 찍는다. 바로 내적 감정의 표출이다. 그는 내면의 정신을 인체를 매개로 표출한다. 이는 그의 조각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는 몸을 통해 영혼을 표출한다"고 언급했다. "육체와 영혼을 주체와 객체라는 상하관계로 인식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영혼과 육체는 둘이 아닌 하나이며, 수평적인 관계다. 몸이 영적인 기운이나 내면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통로라고 한다면, 몸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다름없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1m 규모의 좌상이다. 이 작품에서 자작나무 특유의 노란빛을 검정처럼 보이는 흑연색으로 대체했다. 흑연색은 수성아트피아 전시에서 처음 시도됐다. 작가가 “불에 탄 느낌을 입히기 위해 흑연색을 입혔다”고 했다. 흑연색은 현실세계의 기운을 누르고, 깊은 심연으로 몰입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가장 편하게 쉬면서 정신을 수양하거나 명상하는 분위기를 위해 검정계열로 기운을 눌렀다.”

그의 조각에는 원근법도 적용된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과장되거나. 신체 사이즈에 비해 발을 과장하는 등 비현실적인 비율의 원근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포즈의 시각적인 안정감을 담보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다. 그가 조각에 원근법을 구사하는 이유는 강조하려는 주제와 관련이 깊다. 그의 의식은 ‘시각적인 차원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실존’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몸은 ‘실존’을 설명하는 ‘실체적 매개체’인 셈이다. “나는 몸을 생각을 표출하는 통로로 인식한다.”

특히 작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배적인 담론이나 정서에 관심을 기울인다. 주제가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기보다, 보다 높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때로는 환경문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인간소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대주제는 사회현상에 맞춰진다는 것. 인체 조각에 눈동자를 표현할 공간을 마련하고도 막아놓은 이유 역시 ‘개별성’을 차단하고 ‘익명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작가의 시선이 사회적 차원에 맞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관람자의 시선까지 익명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관람자의 속성은 철저하게 ‘개별성’의 차원에서 작품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각자의 경험이나 지식 속에서 작품을 해석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비상하려는 사람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성장기를 떠올리거나, 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사람일 경우 열정이 넘쳤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식이다.

작품이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작품은 수많은 관람자와 연결된다. 이시영은 이러한 전시장의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작품이 곧 ‘플랫폼’이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관람자 개개인이 각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감상의 대상은 동일한 작품이라고 가정할 때, 작품은 곧 ‘플랫폼’이라는 공식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그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존재함을 의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살아감'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존재함을 의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살아감’을 의미한다. 내 작품을 보고 관람자가 자신의 실존을 반추할 수 있으면 나는 조각가로서 만족한다. 그것이 곧 함께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반증이 아니겠나?”

영남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각 전공으로 미술 석사와 뉴멕시코주립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를 받은 이시영의 전시는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 2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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