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 코골이(鼻鼾)
이명(耳鳴), 코골이(鼻鼾)
  • 승인 2021.06.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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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옛날 동구 밖에 있는 조그마한 연못에 개구쟁이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물장구를 치고 자맥질을 하며 왁자지껄 즐겁게 떠들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한 아이가 놀라면서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아이에게 "너, 이 소리 들어 봐! 내 귀속에서 앵앵거리지?"하며 말했다. 옆에 있던 아이가 귀를 맞닿게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피리소리, 생황소리, 나발소리가 들리잖아! 그것도 못 들어!"하고 소리쳤다. 그리곤 자기는 신기한 이명(耳鳴) 소리를 다 듣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속상해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선비가 모처럼 고향에서 친구를 만나 한 방에 자게 되었다. 그 친구는 옹알이 하듯이, 휘파람 불 듯이, 푹푹 한숨을 쉬듯이, 탄식하듯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빈 수레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 듯이 '드르렁! 드르렁!'하고 코골이를 했다. 장작불을 때듯이,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이듯이, 톱을 켜듯이 숨을 빨아들이고, 돼지 멱따듯이 숨을 내쉬며 코골이를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함께 자던 선비가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 사람아, 나는 평소 잠잘 때 코를 골지 않는다네."하고 발끈 화를 내었다.
이 이야기는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 자서(孔雀館文庫 自序)'의 글이다. 연암 박지원은 나만 알고 너만 모르는 이명(耳鳴)을 '득실재아(得失在我)'라 하였다. 득실재아는 '얻음과 잃음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니 앓는 사람만 근심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은 너만 알고 나만 모르는 코골이 비한(鼻鼾)을 '훼예재인(毁譽在人)'이라 하였다. 훼예재인은 '헐뜯고 칭찬하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코골이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흔들어 깨우니 버럭 화를 낸다.

사람들은 자기 혼자 아는 것을 남이 알아주지 않음에 언제나 속상해한다. 또 자기가 깨닫지 못한 것을 남이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을 억수로 싫어한다. 다만 이명(耳鳴)과 비한(鼻鼾)의 경우를 그렇게 비유한 것이지, 어린아이는 이명이고 어른은 비한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며칠 전 '말똥구슬'외 다섯 권의 우리고전을 샀다. '말똥구슬'은 백탑동인의 한 사람인 유금(柳琴)의 '낭환집'(螂丸集)을 번역한 시집이다. 백탑동인(白塔同人)은 정조 임금 무렵 서울의 원각사지에 있던 10층 석탑(흰 대리석 탑)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실학자들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유금, 이서구 등이 양반과 서얼 구분 없이 모여서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된 시파(詩派)이다.

백탑동인의 중심인물인 박지원은 유금의 시집 '말똥구슬' 서문에서 '말똥구리는 자기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네. 따라서 용도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고 해서 말똥을 굴리는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라고 적었다.

이 말은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나오는 글이다. 이덕무는 젊은 시절 스스로를 '결선형귤(潔蟬馨橘)'이라 했다.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이라 는 뜻이다. 이덕무는 선귤처럼 '온갖 서적 많이 정밀하게 읽어 입으로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선귤당농소에는 연암 박지원이 그린 '그물 말리는 어촌 풍경(어촌쇄방도)'에 화제를 쓰기도 했다는 시도 있다. 연암 박지원은 그림도 잘 그렸던듯하다.

어떻든 연암 박지원은 조선 최고의 글쓰기 문장가이다. 그는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진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잠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 진실한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뭇가지에 앉은 잠자리를 잡기 위하여 어린아이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후 앞무릎을 살짝 굽히고 뒤에 둔 무릎은 힘을 뺀다. 그리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살며시 잠자리의 뒤쪽으로 가져간다. 조심조심 다가서는 순간 '아~' 잠자리는 날아가 버린다.

어린아이는 또다시 시작한다. 이번엔 집게손가락을 곧게 펴서 잠자리의 눈동자 쪽에서 빙빙 회전을 한다. '아뿔싸' 잠자리는 휘잉 날아가 버린다. 어린아이는 속도 엄청 상하지만 부끄럽기도 하다. 이 순간이 바로 진실함이다.

이명과 코골이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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