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눈뜰 때
화마가 눈뜰 때
  • 승인 2021.06.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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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故 김동식(52) 구조대장님의 숭고한 헌신에 마음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하며 아울러 유가족분들께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 센터 화재 사고 현장에서 김 대장은 불이 난지 6시간 만인 17일 오전 화염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자 동료 4명과 함께 인명 검색을 하려고 지하 2층에 진입했다가 불길이 재연소되는 과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홀로 고립, 실종되었다.
당시 김 대장 등이 지하 2층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에 쌓인 가연물을 비롯한 각종 적재물이 무너져 내리며 불길이 세졌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동료들과 달리 김 대장은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즉시 김 대장 구조작업이 이뤄졌지만, 건물 곳곳에 쌓인 가연물질 탓에 점차 불길이 거세지며 건물 전체로 불이 확대해 구조작업은 얼마 안 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진행된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에서 "구조대 투입해도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와 구조작업은 곧바로 재개됐고 가족과 동료, 시민 등 많은 이들의 바람에도 결국 김 대장은 건물에 홀로 남은 지 48시간 만에 끝내 시신으로 돌아왔다.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는 내부 화염으로 인해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며 수습할 수 있는 대로 수습해서 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오는 21일 오전 9시 30분 경기 광주시 시민체육공원에서 경기도청장으로 김 소방경에 대한 영결식을 엄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화재는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이 축구장 15개 넓이와 맞먹는 12만7천178.58㎡에 달하는 건물 지하 2층에서 시작됐다. 물품 창고 내 진열대 선반 위쪽에 설치된 콘센트에서 처음 불꽃이 이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얼마 전, 합천 '오도산'에 올랐던 일이 떠오른다. 오도산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으로 오도산이라 한다. 가야산맥 중의 한 산으로 오도산의 원래 이름은 '하늘의 촛불'이라는 뜻의 '천촉산' 또는 까마귀 머리처럼 산꼭대기가 검다고 해서 '오두산'이라 불렀다. 오도산은 높이가 1,134m이며 주위에 두무산(1,038m), 숙성산(899m) 등이 솟아 있으며 1982년 한국통신이 정상에 중계소를 설치하면서 오도산 정상을 약 13m나 깎아내고 중계소를 건설하였고 그때 만든 도로를 이용 일반 승용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8월~10월엔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진작가들로 일출(동쪽), 일몰(서쪽) 포인터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몇 차례 표범과 호랑이가 잡혔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최후까지 생존한 표범은 1962년 2월 11일 오도산에서 잡힌 표범이 한국의 마지막 표범이라고 한다. 합천군에서는 최근 가야마을 주민들의 진술과 일본인 동물학자 엔도 키미오가 쓴 '한국의 마지막 표범'을 바탕으로 표범이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춤바위' 위쪽에 한국의 마지막 표범 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했는데 오도산 정상을 향해 오르던 중 '한국의 마지막 표범 서식지'라고 쓰인 비석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화들짝 놀라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표범이 살아 돌아온 듯 붉은 눈동자가 비석 뒤, 바위틈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함께 간 일행이 놀란 나를 진정시킨 후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촛불 네 자루가 불이 붙은 채 바위틈 사이에 숨어 불타고 있었다.
우린 곧장 현장 사진을 찍고 119에 신고를 했다. 한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토요일 주말이었고 해가 넘어간 뒤의 늦은 시간이었다. 신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차의 행렬과 당직자인 듯 보이는 군청 관계자, 마을 이장 등이 연이어 붉은 비상등을 부라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우린 안심하고 산에서 내려 올 수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곳 어디에도 CCTV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낱 씨앗에 불과한 불씨 하나가 화마로 번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여전히 섬뜩하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불조심 표어를 꺼내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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