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과 헌혈
수혈과 헌혈
  • 승인 2021.06.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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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우리 몸에는 피가 흐른다. 피는 생명이다. 피가 모자라면 우리는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피가 모자라는 경우, 혹은 피가 제 기능을 못 할 때 외부로부터 피를 공급받는다. 그렇게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수혈(輸血)이라 한다.
수혈은 피가 필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피를 받는 행위다. 수혈을 받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하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헌혈(獻血)은 건강한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건강한 몸으로 충분히 자신의 몸에서 피를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헌혈은 건강한 경우에 가능하다. 병이 있거나 약을 먹고 있거나, 혹은 자신의 피를 헌혈하게 되면 몸에 무리가 있을 때는 헌혈을 할 수 없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건강하다'라는 신호가 된다.
수혈이 필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를 받아야 하고, 헌혈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를 나눠야 한다. 그렇지 않고 피가 필요한 사람의 팔에서 피를 뽑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피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의 팔에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한다면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수혈이 필요한 사람과 헌혈이 필요한 사람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강의하고 교육하는 사람인데 이따금 상담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에너지를 조금씩 나눠준다. 그 에너지는 힘을 실어주는 긍정의 에너지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위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헌혈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긍정의 에너지가 부족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긍정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행위. 그것이 피를 나누는 헌혈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상담을 받는 사람은 일종의 수혈받는 것과 같다. 그들은 어느 날 방향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경우도 발생된다. 때로는 상처를 받아 위로가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 이때가 바로 수혈을 받아야 할 시점이다. 적절한 때에 제공되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상담을 요청한다는 것은 지금 그 사람은 수혈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현 상태를 모르고 여전히 헌혈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곧 자신도 죽을 지경인데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 분명히 필자는 그 사람에게 이야기해준다. "지금은 수혈받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긴급상황입니다. 지금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십시오"라고 말이다.
수혈이 필요할 때는 미루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가 있다. 우리 삶에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힘든 날이 찾아오면 긍정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살피지 않은채 건강했을 때처럼 남에게 에너지를 나누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된다. 내가 살아야 남이 산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내가 살아나는 것은 가족이 살아나고, 내 주변이 살아나는 일이다. 반드시 자신을 먼저 살피고 관리해야 한다. 헌혈이 가능한 몸인지 수혈이 필요한 몸인지 늘 살피고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쉴 때는 쉬어야 하고, 에너지를 나눠야 할 때는 나눠야 한다.
살다 보면 반드시 힘든 날이 온다. 그때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타인에게 나눌 수는 없다. 그러면 나의 몸과 정신은 번 아웃(burn out)되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상담사들이 에너지를 나누는 일이다 보니 종종 번 아웃 현상을 겪게 된다. 그래서 상담사들은 적당한 휴식과 체력관리를 통해서 자신을 늘 안정 상태로 관리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담을 더 할 수 없게 된다. 정신과 의사들이 한 번씩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동료 의사들에게 가서 점검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모두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게 전문가의 자세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 자기 삶에 전문가다. 그래서 늘 자신의 삶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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