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며- 의료의 중심은 사람이다!
돈벌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며- 의료의 중심은 사람이다!
  • 승인 2021.07.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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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원격의료라는 것은 산간도서벽지 주민 등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화상통신으로 진료 받고 처방까지 받게 하는 것인데, 겉포장만 요란하지 실제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어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로 몇 년째 보류중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경제인 간담회에서 과도한 규제를 적극 개선하는 ‘규제 챌린지’를 6월부터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원격의료 허용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간담회 도중 기업인들로부터 추천받은 15개 과제에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원격조제 규제 개선’, ‘약 배달 서비스 제한적 허용’ 등이 최우선 항목으로 포함된 것이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의 집단감염 방지를 위해 전화로 상담과 처방이 가능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였으나, 이번에는 ‘한시적’이라는 최소한의 틀조차 대놓고 깨고 나온 것이다. 이번 ‘규제 챌린지’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격진료와 약국의 원격조제, 조제된 약의 택배배송까지 합한 그야말로 완전한 형태의 원격의료를 담고 있다. 이것이 허용되면 환자는 의사나 약사의 직접 대면 없이 진료부터 약품 수령까지 가능하게 되어, 정부와 일부 대기업의 숙원이었던 원격의료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 정부가 추진해 온 원격의료 허용은 보건의료적인 측면이 아닌, 정치적인 의도에서 시작되고 진행되어 왔었다. 정부는 국민의 보건의료 향상이나 의료제도의 개선이 목표라고 선전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뜯어보면 그 속내는 원격의료를 통해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경제적 이득 챙기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된 IT기술을 활용하여 산간도서벽지 주민 등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미 우리나라의 의사밀도는 OECD국가 중 최고 수준(1㎢당 0.98명)이므로 의료 접근성 개선이라는 명분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단골로 써먹고 있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선전도 앞 뒷말 자르고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억지로 끌어낸 견강부회의 전형이다. 캐나다, 핀란드 등 국토는 넓고 의사밀도가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심지어 반경 100km 이내에 의료기관은 고사하고 인적조차 없는 격오지가 많아 의료접근성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원격의료를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국토가 좁고 전국 읍·면·리·동까지 동네의원이 많아 의료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필요한지 도대체 의문투성이다. 오히려 지리적 접근성에 근거하여 근근이 운영되고 있는 시골의 동네의원과 중소병원들이 수도권의 대형병원과의 무차별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되어, 결국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조장과 동네의원, 지방 중소병원의 잇단 폐업의 의료공백 도미노 사태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 또한 원격의료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나 비윤리적인 진료행태의 의료 왜곡이 발생되어 의료체계의 혼란이 가중될 위험성이 있다.

원격진료의 명분인 의료접근성 개선은 의료산업 발전이나 일자리 창출의 시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정책 차원의 문제이다. 진정 국민의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면 의료계가 그 필요성을 제안하고 복지부가 나서야 할 문제이지, ‘규제 챌린지‘의 과정에서 기업인이 철폐를 주장할 ‘규제’가 아닌 것이다. 정부가 산간도서벽지의 국민들에게 큰 편의성 증대를 가져다주고 의료복지 선진국이 될 것처럼 멋지게 포장하고 홍보해도,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단말기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일 것이고 통신비용을 챙길 기업이지 국민들이 아니다. 정부가 진정 산간도서벽지 주민들을 걱정하고 의료소외지역이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원격의료라는 방법을 생각했다면, 그보다 먼저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획기적으로 손보는 것이 급선무이고, 공공의료체계를 개선하여 산간도서벽지에서도 의사들이 걱정 없이 병의원을 열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원격의료와 그에 관련된 달콤한 수익 창출의 환상에서 깨어나 의료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원격의료는 수십 번을 생각해보고 여러 각도로 재어 봐도 그 시작부터 결론까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춘향 그 자체이다. 문케어, 의대정원 확대 등 왜곡된 의료정책의 홍수 속에서 힘들어 하는 의료계나, 주무부서임에도 들러리 서고 있는 보건복지부나, 기업체들 소원풀이에 나서는 중소기업벤처부나 딱하기는 매일반이다. 돈벌이와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이 융합하여 밀어 붙이는 원격의료는 진정 사양하고 싶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의료를 왜곡시키지 말라. 그리고 의료는 의료인에게 돌려 달라. 의료의 중심은 돈벌이가 아니다. 의료의 중심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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