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특검과 벤츠 여검사
포르쉐 특검과 벤츠 여검사
  • 승인 2021.07.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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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자칭 수산업자' 김씨의 사기행각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김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울남부지검 소속의 이모 부장검사에게 고가의 명품 시계와 현금 등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근 현직 이모 부장검사실을 압수수색했다. 김씨는 검찰에 송치되기 전인 2021년 4월 초 이 부장검사를 비롯해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TV조선 앵커 A씨, 현직 총경급 경찰간부에게도 금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 4명을 입건하고, 12명을 참고인 조사를 했다.

김씨는 정·재계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선동오징어 사업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지난 2018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피해자 7명으로부터 모두 116억2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86억원을 사기당한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친형도 포함돼 있다. 또한 김씨로부터 선물을 받았거나 만난 인사로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있으며, 국민의힘 당 홍준표 의원은 2년전에 김씨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금품 로비 의혹과 더불어 김씨가 2017년 12월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경위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주목하는 인물은 박영수 특별검사다. 그는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박근혜 대통령 비위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국정농단의혹사건수사특별검사팀 특별검사였다. 박영수 특검은 김씨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제공받은 정황이 드러나자 포르쉐 차량을 무상으로 받았다는 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박 특검은 "연식이 10년된 차를 이용하고 있는 부인을 위해 차를 구입해 주기 위해 여러 차종을 검토하던 중 이아무개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렌터카 회사 차량의 시승을 권유했고, 그 회사가 지방에 있는 관계로 며칠간 렌트를 했다"고 설명했으며, "렌트비 250만원을 이모 변호사를 통해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다. 누구보다 청렴해야 할 박영수 특검이 사기꾼의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참 딱하다는 생각이다.

박영수 특검의 '포르쉐 사건'은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던 부산 법조비리 '벤츠 여검사' 사건을 꺼집어 내었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부장판사 출신?최 모 변호사가 사건 청탁을 부탁하며 내연의 관계인 이 모 여검사에게 벤츠 S클래스 승용차 리스료를 대신 내주고 명품 핸드백을 사줬다가 걸린 사건이며, 그 당시 핸드폰 문자메시지 기록이 공개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최 변호사와 이 모 검사는 연인관계이므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받은 게 입증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한 상황에서 부정청탁과 부정한 금품수수가 근절되길 바라는 뜻에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한 김영란법의 핵심은 스폰서 형식으로 뇌물을 받았으나 대가성,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한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은 별개로 하더라도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큰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은 윤리적 경영을 뛰어 넘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 경영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의 권고에 따라 2020년 1월 윤리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독립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정 부장판사는 2021년 1월 18일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삼성 준법감시제도 설립 등 노력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실효성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재용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자칭 수산업자' 김씨의 사기행각은 그동안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역설한 언론과 법을 제정한 국회의원, 그리고 공정한 법집행을 담당할 검찰과 경찰이 먹이사슬로 연루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정치적 경륜이 풍부한 박지원 원장과 김무성 전의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박영수 특검과 특검에 파견된 이모 부장검사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가장 공정해야 할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결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꼼꼼하게 생각하게 한다.

눈 앞에 놓인 자기 이익과 윤리가 충돌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 장삼이사라면 윤리에만 바탕을 두어서도 안 될 것이고, 그렇다고 이익에만 바탕을 두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구속한 국정농단의혹사건수사특별검사팀의 특임검사 정도라면 윤리에 기반한 선택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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