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차별’은 무엇인가
‘합리적 차별’은 무엇인가
  • 승인 2021.07.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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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견숙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사
지난 6월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교육부의 의견에 찬반논란이 거세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신체조건, 성별정체성, 학력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골자다. 물론 너무 모호하고 근거가 부족한 등 이 법에 대한 우려도 많다. 하지만 합목적성에 부합하지 않는 소위 '쓸데없는 차별'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교육부는 이 법률에 대하여 '학력'에 대한 언급은 삭제하기를 제안하였다. 사유인즉슨 학력 차별은 '합리적'이라는 거다. 연령이나 성, 국적, 장애 등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이며, 학력을 대신하는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과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 교육부의 이러한 권고는 현 정부의 행보와도 반대 입장이다.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 및 국정과제의 하나다. 대학 입시에서 출신 고등학교를 완전히 차단한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한 것도 학력이나 학벌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헌법소원까지 이르게 된 자사고, 외고 등에 대한 폐지 역시 사실 학교서열화에 따른 학력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뜻에서다. 그러면 그 외에 어떠한 '합리적인 학력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학력을 대신하여 개인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가 아직 없다는 논거가 '교육부발'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을 미래의 인재로 길러내는 과정에서 이들의 능력을 측정할 '표준화된 지표'가 필요하다는 중앙정부의 주장은 참으로 슬프다.

학력을 대신하는 개인의 능력은 무한하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있다. 이는 하나의 잣대일 뿐이다. 어떤 학생은 노래를 잘 하고, 어떤 학생은 리더십이 탁월하며, 어떤 아이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학력이 높은 것은 학생의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생 스스로가 발현할 수 있는 능력에 맞추어 교육할 수 있도록 각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학업 외에는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가 없다니.

사실 우리 사회는 학력에 대하여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젊은 세대의 학부모 역시 아직도 학업에 대한 예민성이 남아 있음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운동회를 떠올려 보자. 개인 달리기 시간에 가장 먼저 결승점에 들어오는 아이에게는 아직도 1등 도장을 손목에 찍어준다. 아이는 그 도장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켜보던 모든 부모님들도 그 아이를 칭찬한다. 그러나 시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에게 이와 같이 '1등 도장'을 찍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학부모들로부터 "왜 잘 하는 아이만 차별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내가 보기에 사실 두 아이는 각각 '체력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 '학업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일 뿐이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학업에 대한 예민성을 가지고 있다.

천부적 조건이 아닌 '학력'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 법안으로까지 제시된 이유 역시 이러한 예민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초, 중, 고등학교까지 포함하는 출신 학교, 학교의 지역, 사교육과 학업 능력, 경제 사정과 학력의 기간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학력'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차별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것을 무작정 개인의 노력에 의한 합리적인 차별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비판 속에 뒤늦게 교육부에서는 이러한 의견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부디 더 나은 수정 의견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와 더불어 학력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교육계는 차별금지법 전반에 대하여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우리네 교육정책의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성별이나 장애, 나이 등의 천부적 조건에 대한 차별의 합리성은 정말로 갖추고 있는가? 이 역시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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