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그늘에 잠든 아이가 있네
돌틈 사이로 들어가는 먹뱀꼬리를 봤는지
하얀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꿈을 꾸고 있네
높아 진 4월 하늘에 찬기운이 남으로 내려오네
잠든 아이 얼굴에 울음 들었네
잔잔한 돌들이 깔린 산허리에 선
늙은 산능금나무가 꽃불을 켜 보이네
잠든 어린 영혼을 부르고 있네
그 자리가 어둡고 깊은 동굴 속이든지
절망이 오는 한낮 虛無한 마음속이든지
亡靈든 옷자락이 펄럭이는 세기말 영혼이든지
◇홍성은= 1963년 강원 태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대구, 경북지역대학 반월문학상 대상 수상(10).
<해설> 시간을 캐는 일은 어둠을 털고 선로를 할퀴며 다른 시간으로 떠나 살아있는 어떤 느낌 그대로와 마주하는 일이다. 햇살의 입맞춤이 몰고 온 연둣빛 파문에 함락된 봄언덕은 미망에서 깨어나 모든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궁극의 벽장 속에서 잠든 시간을 꺼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둡고 깊은 동굴에 가슴이 물드는 날 그리움의 속력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느 지점을 캐내니 논두렁에 기억을 묻는 늙은 아비의 처지가 지나간 시간처럼 서 있다. 바닷가로 흘러 온 보리이삭의 정령들에게 행복을 물어보니 고양이들은 소행성에서 팔리는 행복론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지위를 누리는데 평생을 보낸다고 한다. 사람이 쉴 만한 통속적인 물가에 앉으니 그림은 흘러간 시간, 음악은 흐르는 시간 밤은 낮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였다. 동경으로 부푼 나무들의 고요한 함성은 더 이상 양식[樣式]의 역사를 그리려 하지 않는다. 이젠 사물 없이 그 자체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런 의미도 필요하지 않은 세계에선 영혼과 영혼이 맞닿는 봄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것들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