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 ‘2021 중견작가전’ 참여작가 정태경
대구문화예술회관 ‘2021 중견작가전’ 참여작가 정태경
  • 황인옥
  • 승인 2021.07.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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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정체성, 매화·맨드라미 등 자연 소재 통해 은유·시각화
추상적 액션 페인팅도 구사…휴머니즘 연장선 ‘인물화’ 병행 의지
정태경작-내친구의집은어디인가
정태경 작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40여 년 간 계속해서 곱씹었다면, 지금쯤 통달했을 법도 한데, 작가 정태경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스스로의 무지(無智)를 인정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강변하기 위해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던 것과 정태경의 의문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결국 “자신을 알고자 하는 의지”에서 합치점을 인정하게 된다. 정태경도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40년간 ‘자신을 찾기 위한’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를 곱씹어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세상은 급속하게 변해왔고, 변화의 속도는 그가 감당하기에 버거웠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의 내면은 갈대처럼 흔들렸을 것이고, 자기 점검은 필수였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정태경의 예술은 ‘정체성 찾기’라는 외길에서 순간순간 발견한 ‘실존(實存)’이자 ‘본령(本領)’이었다.

정태경 화면에는 봄의 매화, 여름의 맨드라미, 가을의 호박, 겨울의 바다나 황무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두가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이나 대상들이다. 때로는 풍경 속 대상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많은 경우는 거듭된 사유 속에서 상기된 정체성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그림은 재현의 결과이기보다 심상화라는 평가가 어울린다.

“일상 속 풍경이나 사진 속 풍경을 보면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정서들을 반추하곤 한다. 잊혀 졌거나 잃어버렸던 정서들이 되살아나는데, 그 감정들을 풍경 속 대상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것들은 실재라기보다 마음의 풍경이다.”

첫 작업의 주제는 ‘나는 집으로 간다’였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28살에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그때부터 관심을 둔 주제였다. 부산 출신인 그는 영남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당시 그는 이방인으로 부산과 대구의 기질적인 차이를 경험했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더욱 또렷하게 각인하게 되었다.

이방인이 향수에 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당시 어린 시절 뛰어다녔던 부산의 달동네와 전통시장의 비릿한 바다 내음을 떠올렸다. 그 정서들, 즉 자신의 정체성의 실체가 ‘집’으로 은유되어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의 집이 아닌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된 어린 시절의 감수성에 대한 은유였다.

꽃, 나무, 호박, 풀 등의 소박한 자연이 소재로 등장한 두 번째 주제는 ‘나의 집은 어디인가’다. 작업실을 성주로 옮기면서 작업실 주변에서 만났던 풍경들을 소재로 그렸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부산, 청년에서 성인으로 키운 대구, 작업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 성주로 예술과 삶의 터전을 옮아가면서 부표 같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됐고, 그러면서 그의 정체성은 더욱 풍성해졌다. ‘나의 집은 어디인지’는 복잡다단했던 삶의 여정 속에서 찾고자 했던 그의 본령에 해당됐다.

성주에서 대구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감행했다. 탐구의 대상이 작가 자신으로부터 보편적인 대상으로 확대된 것. 특히 삶과 예술의 터전이 방천시장에 뿌리를 내리면서 인식의 지평은 더욱 견고해지고, 확대되어갔다. 방천이 주는 정서적인 분위기가 변화를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방천은 시골도,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중간지대였다.”

시골과 도시의 정서가 공존하는 방천에서 그는 내면의 안정을 찾았다. 방천이 선물한 내적 평화는 자신의 삶을 보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관조할 수 있게 했고, 더 나아가 방천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사람들의 삶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연작은 방천을 경험하고 방천에서 깨달은 사유의 결정체였다.

정태경의 정체성은 언제나 과거지향이었다. 그에게 과거는 ‘현실’ 이전의 ‘본령’으로 다가왔다. 우리 고유의 정서라고 그가 믿는 순수와 정(情)이 살아 숨 쉬는 과거를 현재에 되살리려는 의도가 강했다. 그것은 단절된 역사의 복원이었고, 잃어버린 정서의 환기였다. “잃어버린 우리를 회복하는 것은 내게는 진정한 진보의 첫 출발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의 정체성 찾기는 액션페인팅과 전통회화로 표출되었다. 힘찬 기운으로 내리꽂는 즉흥적 선들과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흘렸을 때 우연적으로 드러나는 효과는 본능적 행위의 산물이었다. 동양회화의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으로 완결된 드로잉이었다. 직관과 함축, 침묵과 자유가 빚어내는 이중주는 정태경 액션 페인팅의 백미였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주로 색지에 선 드로잉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동양회화와 서양회화의 합작이다. “한국인인 내 내면 속에는 선조들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을 외면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포착해 드로잉으로 드러낸다.”

신체의 격발로부터 촉발된 액션 페인팅의 완결점은 묵직하고 단호한 선이다. 그러나 선은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결과다. 즉흥성을 전제로 하지만, 즉흥적인 감수성이 단숨에 기운 생동하는 선의 형태로 드러나기까지는 내적 성찰과 산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본능의 발현이 있기까지 본능과 이성의 협공이 있어야 한다는 것.

“색지를 벽에 붙여놓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그 생각들이 한 지점에서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 그 시점에 액션 페인팅을 시도한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최근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장지에 페인트로 액션을 단계적으로 중첩한다.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어 내렸던 이전의 드로잉과 달리 몇 차례의 붓 터치가 더해진다. 이때 텍스트가 선과 함께 혼재된다. “동양회화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가능성도 내밀하게 개입시킨다.”

추상적인 드로잉으로 드러나는 액션 페인팅과 달리 회화는 구상적인 요소가 짙다. 꽃과 나무와 산과 바다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다. 하지만 실제 풍경의 그것 과는 결을 달리한다. 절제와 강조, 평화와 갈등이 교차한다. 마음이라는 필터에서 걸러진 심상의 풍경은 그렇게 시간과 감정의 중첩 속에서 완성도를 더해간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표현했기 때문에 실제 풍경과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그가 조심스럽게 인물화를 언급했다. 차후에는 풍경과 함께 인물화도 병행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40년간 매달렸던 ‘휴머니즘’의 연장이다. 우선은 주변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화면에 담아보려한다. 물론 인물화도 철저하게 그의 내면에서 걸러내고 새롭게 재구성한 모습들이 될 것이다.

“작업은 계속해서 진화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정체성과 휴머니즘이라는 대전제는 변함없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현대미술 속에서 동서양을 아우르고, 단절된 역사와 정서를 이어가겠다는 정태경은 대구문화예술회관 주최 ‘2021 올해의 중견 작가전’에 선정되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정태경, 김건예, 손파, 신상욱, 이지영 등의 함께 하는 ‘2021 올해의 중견작가’전은 8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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