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수박, 단면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씨의 배열 ‘재미’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수박, 단면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씨의 배열 ‘재미’
  • 윤덕우
  • 승인 2021.07.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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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달린 장면
넝쿨 뻗는 속성 통해 번영 약속
쥐가 파먹는 장면
조선 후기 관료들의 도적질 경계
7월 초복이 지나면서 온 세상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일 최고온도를 찍으면서 삼복 더위가 시작되었다. 더위를 이기는 과일로는 뭐니 뭐니해도 여름 과일의 대명사 수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수박은 마치 백호탕과 같은 해열 보음 작용이 있다고 하여 천생백호탕[天生白虎湯] 출처:보물 제 1227호 식물본초(食物本草)이라고 불렸다.

수박은 모든 과일 중에서 수분이 가장 많은 과일 중에 하나이다. 수박을 한의학적으로 살펴보면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며, 위, 심장, 방광으로 들어가서 뜨거운 여름철 더위를 가라앉히는데 좋은 천연 전해질 음식라고 할 수 있다.

수박(Citrullus vulgaris)의 조상 식물은 Tsamma melon ( Citrullus lanatus var tastius )이며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칼라 하리(Kalahari)사막지대로서 신석기 시대에도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투탕카멘 등의 파라오의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도 이미 4000년 전부터 수박이 재배되고 있었다고 한다.

수박은 주로 지중해 연안에서 재배되었는데 그리스에는 3000년 전에, 로마에는 기원 초기에 전파되었다. 하지만 지중해 문화에서 수박은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13세기에 무어의 침공(Moor invasion)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수박은 수분과 함께 체내에 쉽게 흡수되는 당질(포도당, 과당)과 비타민 C, 베타카로텐, 아미노산, 유기산 등이 풍부하여 갈증을 풀고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게 중요한 사막에서는 음료로 귀중하게 여겨져 왔으며 중국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져 (서역의 박)이라는 의미로 서과(西瓜)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신사임당(1504-1559)의 그림으로 알려진 초충도 병풍(草蟲圖屛風 보물 제595호)의 ‘수박과 들쥐’라는 그림에 수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미 수박의 재배가 보편화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초충도-수박
초충도-수박과 들쥐 박승온 작 2009년 제작 지본채색 개인 소장

이렇듯 과(瓜) 또는 고(苽) 이름으로 분류되는 수박, 오이, 참외 등으로 넝쿨로 커서 열매를 맺는 초본(草本)식물이다. 이 열매들은 고전적으로 번화(繁華)와 성과(成果) 및 자손 번성을 의미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에 있는 “면면하게 이어지는 오이 넝쿨, 주나라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산 것은 저수와 칠수에 터전을 잡으면서 부터이다”에서 ‘면면과질’은 끝없이 이어지고 뻗어 나가 주렁주렁 열매가 열리는 성과의 의미로 상징된다.

수박을 소과도에 화제로 등장하는 이유도 이러하다. 대체로 수박 그림은 세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진 이미지로 화면에 표현되었다. 잘 익어 열매가 달린 자연의 상태, 쥐가 파먹는 장면, 상단의 일부가 칼로 잘려지고 그릇에 올려진 형태의 세 가지이다. 특히 민화로 많이 제작된 문방도나 감모여재도에 그려진 수박은 잘라 놓은 단면을 보여 주면서 잘 익어 탐스러운 수박 속 수박씨의 기하학적 배열을 표현하여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거리-리움미술관
책가도-수박부분 19세기 지본채색 (31cm x55.8cm) 리움미술관 소장

이렇게 책가도나 감모여제도에 수박을 그리는 이유는 사기(史記)에 실린 동릉후(東陵候) 소평(邵平)이 정계에서 물러나 ‘동릉과東陵瓜(수박)’를 재배한 일화와 결부되어 충성을 지키며 여유로운 인격을 보여 준 의로운 은자를 비유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문인들도 오이와 수박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편 명나라 선덕宣德 연간1426∼1435 이후로 그리기 시작한 설치류인 쥐와 다람쥐 등이 열매를 파먹는 장면은 도적질을 비유하는 주제였다. 수박과 쥐 그림은 조선 후기까지 파렴치한 관료들의 도적질을 경계하는 의미로 감상 되었음을 남공철(南公轍)의 제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특별히 귀한 과일이었던 수박은 부모님이 못 드셨으니 자신도 먹을 수 없다고 하는 효자의 미담을 반영하면서 제사상에 올리는 감모여제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모여제도-서울역사박물관
감모여제도 19세기 초 제작 92.5cm X129.3cm 지본채색 국립역사박물관 소장

단면 보여주는 장면
씨 잘 보이게 해 다산 의미 강조

민화에서의 수박을 잘 보시라. 수박의 잘라진 단면을 표현하는 기하학적 도안은 소과도 표현에서 특징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수박 내부의 씨를 잘 드러나게 하고 씨가 상징하는 다산(多産)의 의미를 확고하게 보여 주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소위 MZ 젊은 세대들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보다 유튜브의 동영상을 더 많이 본다고 한다. 필자도 부쩍 필요한 정보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박은 덩치가 크다 보니 보관도 쉽지 않고, 식구가 작으니 두고 먹기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에 수박 자르는 법을 검색해 보았더니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예전에 식구들끼리 모여 수박 한 통 그 자리에서 썰어 오순도순 먹던 시대가 이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수박을 혼자 다 먹기가 어려워지니 수박을 다양하게 잘라 보관하는 방법부터, 아예 수박 도시락을 파는 곳도 생겨났다.

민화는 그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그림이다. 요즘은 다양한 현대 작가들이 예전의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분위기가 많아졌다. 아예 현대 민화라는 민화의 장르가 분파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이제 그 현대 민화의 화제로 수박의 모습이 변화 할 듯 하다. 위 그림처럼 수박이 줄무니 달덩이처럼 큰 모습이 아닌 네모난 용기 속에 정방형 네모나 핑크빛 속살로 그려질 날이 올 것도 같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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