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을갤러리 이명일展…핑크로 분출시킨 인간의 내재된 욕망
대구 을갤러리 이명일展…핑크로 분출시킨 인간의 내재된 욕망
  • 황인옥
  • 승인 2021.07.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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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 대변하는 色 ‘핑크’
‘욕망·가식’ 이중성 실체로 인식
회화가 품은 상상력·함축성 주목
20년간 유럽 판매작 수백여점
개인 콜렉션 많은 작가 중 한명
佛 가고시안 갤러리서 전시도
이명일-작
이명일作 존재하기 위함인가 유지하기 위함인가? (2017 캔버스에 아크릴 194x130.3cm)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역전된 분야도 있다. 해외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국내에 발이 묶이면서, 그들의 예술활동이 국내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이명일 작가는 그 중 한 명이다. 유럽 유수의 미술 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그의 작품이 올해 아트부산에 선보였고, 지난 13일에는 대구 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막했다. 11월에는 부산 맥화랑에서 전시도 예정되어 있다.

◇ 핑크로 구현한 인간의 욕망

이명일이 다루는 주제는 ‘인간’이다. 타고난 본성이나 후천적으로 길러진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특히 그 중에서도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은 그가 집중하는 주제로, 분출하는 내적 욕망과 그것을 품위 있게 포장하려는 외적인 가식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이 이중성을 인간 존재의 실체로 인식했다.

“내 작업의 주제는 나의 일상과 내재된 감정의 세계를 다룬다. 특히 욕망이 핵심적인 주제다. 인간의 존재가치를 욕망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핑크라는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해낸다. 핑크는 홍등가의 불빛에 사용될 만큼 본능의 색이다. 유럽의 하이 클라스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게이들이 이 작가의 핑크 작품에 찬사를 보내며 소장하는 현상 또한 핑크가 가진 본능적인 끌림과 맞물린다.

그가 처음 핑크를 사용하던 20여년 전만 해도 핑크는 화가들에게 불편한 색으로 통했다. 핑크에게 덧씌워진 ‘원색적’이며 ‘가볍다’라는 관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핑크가 욕망을 대변하는 최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 핑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 핑크에 대한 화가들의 불편한 감정은 사라졌다.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만큼 작가가 핑크를 통해 전개하는 형상은 인간으로 귀결된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윤곽과 기운만으로 표현되는 ‘인간’이지만, 이견없는 ‘인간의 형상’이다. 분출하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이 강렬한 핑크 물감으로 겹겹이 쌓아 올려지며 단단한 서사로 전개되고 있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짜 붙이고, 수압으로 캔버스에 붙은 물감을 깨며 색의 농도와 형태를 조절해가는 독특한 방식과 핑크가 맞물리면서 인간의 욕망은 절정을 구가한다.

“핑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칼라다.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핑크가 모이면 레드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진지해지고 강렬해진다.”

을갤러리 전시에는 구작과 함께 신작이 소개된다. 단색인 핑크를 위주로 표현하던 구작과 보다 다양한 색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신작까지 다채롭다. 신작의 등장은 ‘색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다.

이 작가가 “20년간 몰두했던 핑크가 귀결점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색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사람 형상에서 다양한 변주를 거쳐왔듯, 색의 변화도 그에게는 감정의 변화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색이 본격화된 작품들은 11월 부산 맥화랑 전시에 대거 소개될 예정이다. “감정이 시시 때때로 변화하듯, 색과 형태도 감정 상태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곧 새로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내 안의 벽 허물기와 다름없다.”

그가 ‘회화의 함축성’을 언급했다. 인간의 형태를 감정의 기운으로 표현하고, 핑크라는 금기시되는 색을 사용한 배경에 ‘회화의 함축성’을 두고 있다. “인간의 형상이지만 인간일 수도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 구름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회화가 품고 있는 다양한 상상력과 함축성인데 함축성이 높을수록 그림의 깊이는 깊어진다.”

◇유럽 활동 10년 만에 유럽 미술계의 우량주로

유럽미술계의 주류가 된다는 것은 화가들의 꿈이고, 이명일은 꿈에 근접했다. 유럽에서 하이 콜렉터 중에서도 하이 콜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판매한 작품 수가 수백점을 넘겼으며, 대부분 대형 작품들이다. 판매된 작품 수로 따지면 한국 작가 중 유럽에서 개인 콜렉션이 가장 많은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유럽으로 작업의 근거지를 옮긴 것은 2003년이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던 그가 유럽으로 건너간 배경에는 “20여년 전의 국내 미술계의 후진성”이 한몫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문화예술 케이블방송 A&C에서 미술 디렉터와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인맥이나 학연이 작품보다 중요시 되는 현실과 한국미술시장의 한계성을 경험한 후 왜곡된 국내 미술 시장의 현주소에 실망해 2005년에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유럽활동 10년 만에 그는 유럽 미술계의 주류에 편입됐다. 그의 작품은 스위스 바젤, 취리히, 제네바, 추오츠, 파리, 런던, 마드리드, 른 등 20여 개국 갤러리와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2015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전 초대, 2017년 런던 사치갤러리 전시 참여 및 영국 경제매거진 포보스지(Forbes)에 하이라이트 작가로 소개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현재 독일 아트세이션(artsation.com/en/artists)과 영국 라이즈 아트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치갤러리나 아트세이션은 세계적인 작가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는 미술시장의 가장 상위 레벨들이다.

지난해는 아트 파리에서 프랑스에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와 인연을 맺어 당시 아트 파리 참가 갤러리들과 기획자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그랑 팔레(Grand Palais)전시장에 와서 직접 보고 이 메일로 그의 자료 요청을 해왔고, 이 작가 측에서 자료를 보낸 상태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전 세계에 16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미술 중개상의 핵심으로 꼽히는 갤러리다.

이 작가가 가고시안의 전속 작가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가고시안에 눈도장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유럽 미술계가 그를 보는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작품가격의 상승폭을 가파르게 하고 있다.

올해는 이탈리아 빌라 카를로타 미술관 (Villa Carlotta Museum) 에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Michangelo Pistoletto), 트레이지 에민 (Tracey Emin)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이 예정되어 있다. 코로나 19로 일정은 유동적이지만 올해 안에 개최될 예정이다. 을갤러리 전시는 8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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